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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백의 발상의 전환]압도적 공허, 그 선정적 ‘공(空)’의 체험

입력 | 2015-01-27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김영진 작가

현대미술은 관람자가 어떻게 느끼는가를 중요시한다. 따라서 미적인 공간이나 환경을 만들어 이를 향유하게 하는 작업이 대세다. 그리고 익명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 감정을 유발시킨다. 그런 점에서 추상적이다. 예컨대 사랑의 대상(오브제)을 만들어 보이는 게 아니라 사랑 자체를 느끼게 하고, 공포물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공포를 체감하게 하는 것이다.

매년 5월경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특별전 ‘모뉘망타(Monumenta)’는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전시다. 매년 대표적 현대작가를 선정하고 그랑팔레라는 근사한 건축물 전체를 활용해 개인전을 열 기회를 제공한다. 그랑팔레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은 역사적 건축물로, 유리와 철 골조로 이뤄져 자연광이 간접적으로 들어오는 내부가 특히 아름답다.

‘모뉘망타’전의 4회째 영광의 주인공이 된 인도 출신의 영국 작가 애니시 커푸어는 놀라운 발상의 전환을 선보였다. 그의 건축설치 ‘리바이어던(Leviathan)’(2013년·그림)은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커푸어의 콘셉트는 빈 공간 자체를 전시하는 것이었다. 즉, 작가는 건축물의 구조를 그대로 활용하면서 실내 공간 전체를 폴리염화비닐(PVC)로 뒤덮어 건물 공간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35m 높이에 1만3500m²의 영역을 덮은 대규모 설치로, 재료가 지닌 핏빛 자주색은 햇빛을 투과시킨다. 그 덕분에 건물 내부는 시간에 따른 색채의 변화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수백 m의 긴 행렬을 거쳐 마치 거대한 자궁에 들어가듯 선정적인 핏빛 공(空)의 세계 속에 덩그러니 서게 되는 관람자. 작업에 대한 각자의 느낌은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다. 빨간 핏빛에 대한 시각적 반응과 함께 텅 빈 공간은 온몸으로 스며들며 미미한 인간 존재를 압도한다.

‘리바이어던’이란 작품의 제목은 성경에 나오는 강력한 힘의 바다괴물과 토머스 홉스의 책에서 상징하는 절대적 국가권력에 그 어원을 두었다. 압도적인 거대 권력 앞에 무력한 인간의 공포와 심리적 공허를 커푸어의 작업에서 체험한다.

전영백 홍익대 예술학과(미술사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