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 드라마의 화두는 ‘마음의 병’이다. 예전에도 트라우마를 겪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주변의 도움으로 이를 극복한다는 줄거리의 드라마는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구체적인 병명을 가진 환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이 질환을 치료하는 과정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아예 주인공이 정신과 전문의로 등장하거나 병원을 배경으로 드라마가 진행되기도 한다.
● ‘로코물’ 주인공, 이제는 ‘다중인격’이 대세
한동안 로맨틱코미디의 주인공은 세상에는 까칠해도 내 여자에게는 따뜻한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 재벌2세였다. 하지만 요즘은 다중인격이 대세다. 7일 시작된 MBC 월화드라마 ‘킬미, 힐미’는 7중 인격을 지닌 재벌 3세 차도현(지성)이 주인공이다. 여자 주인공 오리진(황정음)은 정신과 전문의로 차도현의 비밀 주치의가 된다. 21일 방송을 시작하는 SBS ‘하이드, 지킬, 나’는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까도남’을 유행시켰던 현빈이 이중인격을 가진 테마파크 상무 구서진으로 나온다.
● 대인기피, 공황장애… 각종 공포증도 자주 등장
각종 공포증도 드라마가 ‘선호하는’ 정신질환이다. 9일 방영을 시작한 tvN ‘하트 투 하트’에는 다른 사람과 말만 섞어도 얼굴이 새빨개지고 제대로 눈도 못 마주치는 심각한 대인기피증 환자 차홍도(최강희)와 환자만 보면 울렁증을 일으키는 ‘환자공포증’ 정신과 의사 고이석(천정명)이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이중인격을 연기하는 현빈은 ‘시크릿 가든’에서 닫힌 공간을 참지 못하는 폐소공포증 환자를 맡았고, 다중인격자인 지성도 ‘보스를 지켜라’에서 사람이 많은 열린 장소에서 공황장애를 일으키는 재벌 3세로 나왔다.
대인기피증은 정신과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병명이다. 차홍도 같은 증세의 정식 병명은 사회공포증이다. 극중 차홍도는 헬멧을 써서 얼굴을 가리거나 할머니 분장을 해야만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 사회공포증 환자 중에는 선글라스와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려야만 외출이 가능하거나 다른 사람으로 분장하거나 연기할 때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
최명기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정신과 전문의)은 “공황장애나 사회공포증 모두 불안심리가 바탕에 깔린 질환”이라며 “최근 정신 질환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자신의 증상과 비슷한 불안 증상을 특정 질병으로 설명하는 이야기에 대한 수요가 많아졌다”고 분석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