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맛/가쓰미 요이치 지음/임정은 옮김/352쪽·1만6000원·교양인
1959년 중국 장쑤(江蘇) 성 우시(無錫)의 거민식당 풍경. ‘공공식당은 우리의 큰 가정’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교양인 제공
이 책은 음식이라는 렌즈를 통해 거대한 중국사를 훑는 미시사적 접근을 취하고 있다. 중국인이 아닌 일본인 저자가 1970년대 문화혁명 당시 중국의 음식문화를 직접 체험한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롭다. 고도자본주의 사회의 세례를 흠뻑 받은 일본인이 극좌의 사상 투쟁에 내몰린 전체주의 사회를 음식을 통해 해부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혁명 시기의 선전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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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거민식당에 수시로 가지 않으면 홍위병들에게 반동으로 낙인찍혀 수모를 당할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요지경 세상이 따로 없다.
그런데 저자는 이 대목에서 당시 중국 사회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군 간부들이 초대한 고급 음식점에서의 경험이 그것이다. 거민식당과 비교할 수도 없는 산해진미 속에서 마오쩌둥의 고향인 후난(湖南) 성 요리 차오터우취안쯔(草頭圈子·삶은 송아지 대창)가 접시에 담겨 나올 때였다. 간부들은 마오쩌둥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의미로 전원이 기립해 그의 건강을 기원하며 건배했다.
저자는 “건배는 왠지 몰라도 건성이었고 그 전에 나온 요리 ‘라오후페이샹(老虎飛翔·흰살 생선을 갈아 빚은 경단 조림)’을 앞에 뒀을 때 술잔이 더 떠들썩하게 오고 간 게 인상적이었다”고 적었다.
역사는 진보와 퇴보를 반복한다고 했던가. 오히려 중국 요리의 최전성기는 청나라 시절이었다. 중원을 놓고 수많은 민족이 자웅을 겨룬 중국사에서 청의 개방성은 중국 요리의 다양성을 가져왔다. 대표적인 것이 청나라 황실 요리 ‘만한전석(滿漢全席)’이다. 한족과 만주족 요리사들이 서로 솜씨를 뽐내며 개발한 총 108가지의 화려한 음식이 만한전석을 예술적인 경지로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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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 집권 이후 1984년부터 민간의 음식점 설립이 허용되면서 ‘문화혁명의 맛’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저자는 현대의 중국 음식이 진정 부활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제 순수한 만주족의 맛을 아는 사람은 없다. 한족도 마찬가지다. 베이징의 맛이 점점 더 케케묵은 맛으로 느껴지고 마는 것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