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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남편 前妻이름으로 산 할머니, 56년만에 본명 찾아

입력 | 2014-12-29 03:00:00

남편 “아이들 새엄마 놀림 안받게”… 80대, 자기이름-주민번호 남에게 줘




“제 이름을 찾으러 왔습니다.”

2012년 11월 서울의 한 주민자치센터를 찾은 김순심(가명·86) 씨는 6년 전 숨진 ‘김막순’ 씨의 주민등록번호를 자기 앞으로 재등록 신청했다. 고인이 자신의 이름으로 주민등록을 해서 살다가 죽었으니 원상회복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사연은 이랬다. 1958년 재혼한 김 씨의 남편은 부탁이 있다고 했다. 아이들이 새엄마 밑에서 자란다고 놀림을 받지 않도록 죽은 아이 엄마 이름으로 살아달라는 것. 김 씨는 죽은 전처 행세를 하는 것이 꺼림칙했지만 남편의 마음씀씀이가 갸륵해 남의 이름으로 56년을 살았다. 원래 이름은 북한에서 내려와 호적이 없어 고생한다던 동네의 다른 여인에게 줬다.

최근 김 씨는 자신의 이름을 쓰던 여인이 2006년 세상을 떠나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실을 알았다. 죽기 전 ‘진짜 이름’을 되찾고 싶어 주민센터를 찾았지만 “‘김막순’이란 이름으로 주민등록을 한 사람과 지문이 다르다”며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다.

서울고법 행정11부(부장판사 최규홍)는 김 씨가 주민센터를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1심처럼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8일 밝혔다. 재판부는 “제3자가 주민등록을 도용해 자신의 지문을 등록한 것이기 때문에 주민센터는 김 씨의 지문을 새로 등록해 주민등록증을 발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