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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여성의 가슴이 위험에 빠졌어요

입력 | 2014-12-27 03:00:00

◇가슴이야기/플로렌스 윌리엄스 지음/강석기 옮김/460쪽·1만6000원·MID
여성도 모르고 남성이 알 턱 없는 ‘젖가슴의 모든 것’ 인류학적 해석




1958년 미국 베벌리힐스에서 육체파 배우 소피아 로렌(왼쪽)이 거대한 가슴으로 유명세를 탄 제인 맨스필드를 만나자 곁눈질로 가슴 부위를 보고 있다. 정작 맨스필드는 가슴에 묻혀 연기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MID 제공

젖가슴이 커지고 있다.

책에선 란제리 회사에서 생산하는 브래지어 컵 사이즈가 계속 커지면서 수박만 한 크기의 H, K컵 사이즈까지 나온다고 한다. 각종 보형물이나 줄기세포를 이용한 가슴 확대수술이 유행하고 가슴이 발달하는 나이도 어려졌다. 물론 한국도 마찬가지다. 앳된 얼굴의 10대 여자 아이돌이 경쟁적으로 부풀린 가슴을 격하게 흔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젖가슴이 효모를 넣은 빵처럼 부풀어 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까지 유력했던 가설은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의 책 ‘털 없는 원숭이’가 퍼뜨린 관점이었다. 여자가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네 발 시절 남자를 유혹했던 엉덩이를 대신해 가슴을 키웠다는 주장이다. 일부 남성 이론가들은 젖가슴이 그저 남자의 혼을 빼놓는 역할을 한다거나 크면서도 처지지 않은 가슴을 가져야 남자에게 젊은 여성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는 가설까지 펼쳤다. 심지어 젖가슴이 남편의 구타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미국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런 남성 중심적인 주장에 대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골반 모형으로 머리를 얻어맞을 일”이라며 정면으로 반박한다. 저자는 젖가슴이 수유를 최적화하기 위한 방향으로 진화했고 곧 인류의 전부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이론은 이렇다. 젖가슴은 어머니가 먹은 음식을 젖으로 변화시켜 준다. 영양분이 가득한 모유 수유가 가능해지면서 아기는 작은 머리로 태어나도 뇌의 크기를 충분히 키울 수 있었다. 아기가 작으니 여성의 엉덩이가 더 작아질 수 있었고 이는 두 발로 보행을 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인간은 젖꼭지를 빨면서 입 구조가 발달해 언어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둥근 모양의 지방질 가슴은 평평한 얼굴을 가진 아기가 불편함 없이 젖을 빨도록 돕는다. 젖가슴이 큰 여성이 작은 여성보다 아기를 키우는 데 우위에 서는 자연선택이 가슴 발달을 불렀다고 한다.

저자는 책상머리에서만 책을 쓰지 않았다. 전 세계를 돌며 젖가슴과 모유에 대한 취재와 연구를 했고 유방 확대, 유방암 검사도 직접 체험했다. 그는 가슴 성형의 메카 미국 휴스턴을 방문하고, 첫 유방확대술을 받은 여성과 실리콘 확대술로 성공을 거둔 토플리스를 만난다. 저자는 큰 문제 없이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 조금 당황하면서도 위험성을 내포한 가슴 성형에 대해 “젖가슴의 중요한 자연 기능이 위기를 맞고 그저 딱딱하고 생명력 없는 복제품을 갖게 됐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젖가슴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다. 또 각종 화합물이 만들어낸 환경호르몬이 가슴 건강을 위협하고 모유 수유까지 불가능하게 만드는 현실에 눈뜨면서 “가슴이 있다는 게 인간의 조건이라면 가슴을 위험에서 구하는 건 곧 우리 자신을 구하는 것”이라는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마지막 장을 덮고서야 비로소 젖가슴 앞에 조금 엄숙해졌다. 마지막으로 김민정 시인의 ‘젖이라는 이름의 좆’을 암송한다. “네게 좆이 있다면/내겐 젖이 있다/그러니 과시하지 마라/유치하다면/시작은 다 너로부터 비롯함일지니//” 원제는 ‘Breasts’(2012년).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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