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식 정치부 차장
누가 해킹을 했느냐, 확실한 증거가 있느냐로 시끌시끌한 할리우드 영화 ‘인터뷰’ 논란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작 중요한 대목은 주체가 누구냐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명확히 드러났다는 점일 것이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북한을 해킹 공격 배후로 지목한 뒤 ‘비례적이고 적절한 대응’을 예고하던 오바마의 눈에선 강력한 레이저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출발점에선 그도 북한에 마음을 열려고 했다. 대통령 당선자 시절엔 “(북한이) 주먹을 펼 준비가 되어 있다면 미국은 기꺼이 손을 내밀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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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픽처스 해킹과 테러 위협 이후 테러지원국 재지정 검토를 언급하던 오바마의 얼굴에는 북한의 거듭된 거짓말과 약속 위반에 진저리를 치는 표정이 드러났다. 남은 2년의 임기. 이젠 북한의 핵실험도 오바마의 관심을 끌기 어려울지 모른다.
한국 정부의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 언급 이후 한국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과의 약속 위반보다 한국과의 각종 합의를 헌신짝 버리듯 무산시킨 일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게다가 2015년의 외부 환경도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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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둘러싼 사이버 해킹의 파장이 한반도로 번질 수도 있다. 미국 인권단체인 ‘인권재단(HRF)’은 ‘인터뷰’ DVD를 탈북자단체와 손잡고 북한에 살포할 계획이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24일 전화 통화에서 “HRF 측이 ‘인터뷰’ 영화 DVD를 북한에 보내자며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번역 작업이 마무리되면 북한에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전단(삐라)에도 보복타격을 거론하며 난리 치던 북한이 박 씨를 또 위협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른바 ‘최고존엄’ 모독보다 인권이 더 중요한 가치임을 깨닫고 변하지 않는 한 이런 움직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광복 70년이자 분단 70년인 2015년의 정세 변화는 한국 외교와 대북정책에 새로운 접근법을 요구하고 있다. 예기치 못한 변수의 등장에 과거 정책으로만 대응할 수는 없다. 바뀐 환경에선 지켜야 할 길목들이 새로 등장하는 법이다. 북한이 움직일 방향을 미리 점검하고 국제사회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우리의 능동적인 대처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김영식 정치부 차장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