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서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이런 논의의 밑바탕에는 ‘저출산은 국가적 재앙’이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다. 그런데 기자는 이 전제가 올바른 것인지 의심스럽다. 미래의 저출산은 우리가 지금 우려하는 것만큼 심각한 재앙이 아닐 수도 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경제구조의 변화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선 1970년대부터 기업과 가계의 소득 격차가 꾸준히 벌어지고 있다. 기업의 수익은 늘어나는데 노동자의 실질 소득은 그만큼 빨리 늘지 않는다. 런던정경대의 찰스 굿하트 교수는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세계화와 생산성 향상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라 설명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생산라인을 돌리기 위해 과거엔 1000명이 필요했다면 이젠 200명이면 가능하다. 아예 공장을 해외 저임금 국가로 옮길 수도 있다.
낮은 출산율이 끔찍한 재앙이 아닐 수도 있는 두 번째 이유는 인구 구조다. 안에서 사는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한국은 특이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좁은 공간에 몰려 사는 초밀집 국가다. 방글라데시와 대만에 이어 인구밀도 세계 3위다. 낮은 출산율은 과도한 인구밀도에 대한 집단의 자연스러운 반작용일 수도 있다.
경제사학자 그레고리 클라크는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인구가 줄어들 때 오히려 국민 개개인의 생활수준과 행복도는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일례로 13세기 말부터 16세기 초까지 흑사병 창궐로 영국의 인구가 600만 명에서 200만 명 수준으로 급감했던 시기에 국가 경제력은 약해졌지만 1인당 소득은 오히려 2배 가까이 상승했다. 또 근대 이후 아직 저출산 때문에 망하거나 몰락한 나라가 없다는 사실 역시 ‘저출산 국가 재앙론’에 의심을 품게 만든다.
이처럼 저출산 현상이 미래의 국가 경제와 국민의 행복에 가져올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미흡하고 의심할 여지가 많다. 세금을 퍼부어 일단 애부터 낳고 보라는 식의 정책에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는 이유다.
조진서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cj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