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오피니언 팀장
“지상파는 재미가 없다. 나 스스로 뉴스에 중독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종편 채널을 돌려가며 본다. 때로 너무 선정적이고 같은 패널이 여기저기 나와 식상하지만 단지 뉴스 전달이 아니라 분석을 해주니 그동안 소홀했던 시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최근 모임에서 만난 한 60대 대기업 퇴직 임원도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 사건도 종편 아니었으면 그렇게 심도 있게 다뤄질 수 있었겠나. 대리기사 폭행사건에 연루된 김현 의원의 ‘갑질’도 종편 덕분에 집중 보도된 거 아닌가. 지상파만 있을 때는 저녁 9시 뉴스에서 많아야 서너 꼭지 정도 다루고 넘어갔을 사안들이 종편에선 하루 종일 나온다. 야당 쪽 사람들은 종편이 여당 편이라고 출연을 안 한다 들었는데 그래 봤자 손해라는 생각이 든다. 구한말 서양 문물이 물밀 듯이 들어올 때 문을 닫아건 대원군의 쇄국정책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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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현장에서 만난 시청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국의 미디어 생태계가 종편으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이 확연히 느껴진다. 무엇보다 정치 현장의 모든 것이 공개됨으로써 유권자의 감시 눈길이 매서워지고 있다. 수도권에 적을 둔 한 국회의원 말이다.
“선거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주부들은 물론이고 경로당 노인분들까지 정치 돌아가는 일에 훤하다. 이제 정치인들이 뭘 감추고 숨기려 해도 도저히 안 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종편이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콘텐츠와 소통 능력이 없는 정치인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청와대도 사태 파악을 해야 한다. 옳든 그르든 더이상 국민에게 감추는 시대가 아니니 무엇보다 ‘소통 정치’가 중요해졌다는 것을 말이다.”
출범 3년째를 맞는 종편이 새로운 과제를 받아들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본보 칼럼니스트인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의 말이다. “종편이 시청자의 의식 수준을 높였다는 점에 공감한다. 이제 다음 단계는 높아진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일이다. 비전문가들이 신문에 나온 이야기를 베껴 정리하는 차원으로는 더이상 승부가 나지 않는다. 논평의 전문성과 품격을 높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종편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허문명 오피니언 팀장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