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 펴낸 천정환 교수
잡지 ‘뿌리깊은 나무’ ‘보물섬’ ‘샘터’의 창간호 표지. 저자는 “잡지 창간사에는 시대의 담론과 정서, 욕망이 녹아 있다”고 강조한다. 마음산책 제공
천정환 교수
“디지털 시대라 잡지가 쇠락하고 있죠. 하지만 잡지만큼 근현대사 100여 년을 잘 투영한 매체는 없습니다. 지식인이 만든 담론부터, 역사비평, 대중문화까지…. 당시 사람들의 삶과 앎, 나아가 시대의 세밀한 욕망과 취향까지 담아냅니다.”
저자는 3년 동안 박물관,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수백 종의 잡지를 발굴한 후 총 123편의 창간사를 분석했다. 1945년 12월 발간된 ‘백민’부터 ‘민성’, ‘개벽’, ‘사상’, ‘현대문학’, ‘뿌리깊은 나무’, ‘문학과 지성’, ‘말’, ‘키노’ 등 시대별 잡지 트렌드와 독자 반응, 시대 현실도 담았다.
“심각한 잡지만 중요한 건 아니에요. ‘선데이서울’은 3류 잡지로 보일 수 있지만 당시 ‘잡지를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새로운 답을 줬어요. 자본주의가 깊어가고 대중문화가 형성되던 1970년대의 사회 모습이 그대로 반영됩니다. 성(性)도 중요 콘텐츠로 다뤘는데 당시 남성 중심의 문화와 연관됩니다.”
책 속 창간사를 쓴 인물은 함석헌 김현 조세희 강만길 등 지식인과 문필가를 비롯해 조병옥 이후락 김재순 등 거물도 많다. 뜻밖의 인물도 있다.
“1982년 나온 만화잡지 ‘보물섬’ 기억하시죠? ‘아기공룡 둘리’가 실렸죠. 창간사를 찾아보니 박근혜 대통령이 썼더라고요. 직함도 없고 박근혜란 이름만 나와 있습니다.”
“‘핫윈드’는 창간사가 없어서 뺐습니다. ‘월간 팝송’은 창간호를 못 찾아 아쉽더라고요. ‘창작과 비평’도 창간사가 없고 30쪽이 넘는 권두 논문이 실려 제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의 거울이 된 잡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스마트폰 콘텐츠, 블로그, 팟캐스트가 잡지를 대신한다고 봐요. 형태만 바뀌었을 뿐 잡지에 담긴 내용이나 소통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 모색되는 셈이죠. 다만 예전처럼 ‘으�으�’ 하는 순수한 열정을 갖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잡지를 만드는 자세는 사라져 아쉽습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