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서 포상까지 아낌없이… 30년간 400억 지원
정의선 대한양궁협회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정 회장의 부인 정지선 씨(왼쪽에서 세 번째)가 올해 인천 아시아경기 개인 결승전이 끝난 뒤 대표 선수 및 코칭스태프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 회장은 양궁 대표 선수들과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면서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수도여중 체육교사이던 석봉근 선생은 1959년 서울 청계천 부근의 한 고물상에서 서양 활, 즉 양궁을 발견했다. 이것이 한국 양궁의 출발점이다. 전통 활(국궁)과 다른 모양의 양궁에 흥미를 느낀 석 선생은 독학으로 양궁 경기 방법과 훈련법을 익혔고 수도여중에 양궁부를 창설했다. 그는 부임하는 학교마다 양궁부를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쳤다. 한국은 1963년 7월 27일 국제양궁연맹에 정식 가맹했다.
한국 선수들이 처음 국제대회에 나간 건 1978년 태국 방콕 아시아경기대회다. 당시 국내 무대를 휩쓸던 여고생 궁사 김진호(현 한국체대 교수)는 처음 출전한 그 대회 여자 개인전에서 덜컥 금메달을 땄다. 이듬해 베를린 세계선수권에서는 5관왕의 위업을 이뤘다.
1983년 대한체육회는 국궁과 양궁의 분리를 결정했고 그해 초대 대한양궁협회장으로 정 창업주의 6남인 정몽준 전 의원이 취임했다. 1985년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이 2대 회장을 맡았다.
2005년부터는 정몽구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현대·기아차그룹 부회장이 가문의 대를 이었다. 3대째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은 정 부회장은 선수들과 수시로 연락을 하며 지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친분만큼이나 지원도 화끈하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는 선수들의 피로를 감안해 양궁장에서 1시간 걸리는 선수촌 대신 근처 특급호텔을 잡아 선수들이 숙박하도록 했다. 또 매끼 한국 식당에서 개당 40파운드(약 7만 원)짜리 도시락을 주문해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는 서울 태릉선수촌 양궁장 주변을 올림픽 경기장 사진이 인쇄된 대형 천으로 둘러쳤다. 현지 환경에 빨리 적응하라는 배려였다.
이헌재 uni@donga.com·주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