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수 논설위원
당시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은 그저 그런 회사 가운데 하나였다. 코리아나 한불화장품 같은 유명한 회사들이 국내에 300여 개나 있었고 공급 초과로 전망은 밝지 않았다. ‘물과 글리세린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게 화장품’이란 유머도 돌았다. 백화점의 화장품 매장은 프랑스 랑콤과 샤넬, 일본 시세이도 같은 해외 브랜드들이 이미 점령했다.
2014년 아모레퍼시픽은 재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중국 여성들이 받고 싶어 하는 선물 1위가 아모레 화장품이 되면서 주가는 250만 원대로 올랐다. 1990년대 초반 위기가 닥쳤을 때 증권 건설 란제리 같은 비(非)핵심 계열사들을 매각하고 화장품에 집중해 20년간 뚝심 있게 매진한 덕분이다. 당시 비슷비슷했던 화장품 회사들은 대부분 사라지거나 저가 시장에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네이버 주가가 뛴 것은 일본에서 ‘국민 메신저’라 불리는 라인 덕분이다. 라인은 세계 5억 명의 가입자를 확보해 미국 페이스북의 와츠앱, 중국 텐센트의 위챗과 함께 세계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서 3강(强)을 이루고 있다. 첨단 산업의 핵심 플랫폼인 모바일 시장에서 미국 중국과 겨룬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앞으로 금융 쇼핑 게임 콘텐츠 등 많은 산업이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이뤄질 것이다.
라인은 이 의장이 주도한 프로젝트다. 그는 한 강연에서 라인 뒷얘기를 털어놓았다. “한국에서 아웅다웅하기보다 해외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정말 힘들었고 돈도 많이 썼고 심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실패하고 실패하고 더이상 갈 곳이 없을 때 마치 꿈처럼 성공이 찾아왔다”고. 회사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하고 이 의장은 연구개발과 해외 진출에 집중한다. 첨단 기업의 창업자답게 새로운 방식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 경제가 위태롭다는 목소리가 높다. 단기적 경기 침체를 넘어 구조적 위기다. 전자 철강 조선 석유화학 같은 한국의 주력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과거 미국과 일본에서 뺏어온 산업들을 이제 중국에 뺏길 처지가 됐다. 그러나 비관은 이르다. 아모레는 ‘동동구리무’를 고급 브랜드로 만들어냈다. 네이버는 무인자동차까지 만드는 글로벌 공룡 구글에 맞서 국내 검색 시장을 지켰다.
여건이 어렵다고 핑계대지 말라. 세계은행은 189개국 가운데 한국의 기업 환경이 5위라고 했다. 전통 제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다시 태어나고, 구글과 요즈마도 탐내는 스타트업(벤처기업)들이 같이 뛴다면 한국 산업의 미래는 어둡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