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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 과연 믿을 만한가, 도덕심은 위기때도 유효한가

입력 | 2014-10-22 03:00:00

개봉 앞둔 스페인 감독 영화 두 편




스페인 출신 감독은 뭔가 묘한 색깔을 지녔다. 영화사에 초현실주의를 도입한 루이스 부뉴엘 감독(1900∼1983)의 나라답게 몽환적 정서도 자연스레 표현한다. 국내에도 팬이 많은 ‘그녀에게’(2002년)의 페드로 알모도바르나 ‘오픈 유어 아이즈’(1997년)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도 마찬가지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대중에게 친숙한 주류영화 문법을 지키면서도 강렬한 색감과 독특한 설정으로 독창적인 세계를 구현한다”고 평했다.

23일 선보이는 ‘마인드스케이프’와 30일 개봉하는 ‘리턴드’는 이런 전통을 잘 이은 스페인 차세대 감독들의 작품. 마인드스케이프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연출부 출신인 호르헤 도라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고, 리턴드는 2007년 데뷔한 마누엘 카르바요 감독의 3번째 영화다. 모두 북미지역을 배경으로 영어 대사로 촬영했다.

○ 마인드스케이프(Mindscape)

영화 ‘마인드스케이프’에서 천재 소녀 애나 역을 맡은 터이사 파미가. 스릴러의 외양을 쓰고 있는 영화는 애나를 통해 몽환적인 상상력을 자극한다. 남자 주인공 존(마크 스트롱)과 특별한 애정신이 없는데도 야릇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무비앤아이 제공

제목을 번역하면 ‘마음의 경치’쯤 된다. 인간의 뇌에 저장된 기억을 보는 수사 기술이 개발돼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다는 설정. 100% 할리우드 자본 작품으로, 지난해 ‘스토커’를 찍은 박찬욱이나 ‘라스트 스탠드’의 김지운 감독처럼 감독만 미국에 건너가 찍었다.

기억수사관 존(마크 스트롱)은 아내가 자살한 아픔을 가진 중년. 어느 날 죽은 아내와 이름이 같은 재벌 딸 애나(터이사 파미가)가 곡기를 끊은 이유를 찾아달란 의뢰를 받는다. 열여섯 살 애나는 천재적 두뇌를 지녔는데 가족에게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다. 존은 그의 기억을 살펴보다 충격적인 과거를 마주한다.

이 작품은 스릴러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꽤나 철학적이다. 인간의 뇌란 얼마나 믿을 만할까. 어쩌면 기억도 조작이 가능하지 않을까. 게다가 타인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건 얼마나 큰 책임이 따르는 일인지 슬며시 질문을 던진다.

마인드스케이프는 반전이 기가 막힌 영화는 아니다. 허나 미묘한 표정을 낚아채는 클로즈업과 비린내를 머금은 듯 찌릿한 색채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뭣보다 안달루시아 언덕에서 꺾어 든 검붉은 들장미 같은 애나의 눈빛이란. 사랑을 잃고 사랑의 감정까지 잊어버린 중년 존의 메마른 말투와 근사한 앙상블을 이룬다.

○ 리턴드(The Returned)

좀비바이러스 치료제는 영화 ‘리턴드’에서 이야기를 이끄는 핵심 소재다. 치료제를 둘러싼 인간의 욕망이 뒤엉키며 인류의 공존을 흔들어 놓는다. 여주인공 케이트(에밀리 햄프셔)는 남편을 위해 범죄도 서슴지 않는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사날개 제공

역시 제목에 많은 뜻이 담겼다. 말 그대로 ‘돌아온 사람들’. 갑작스러운 좀비바이러스에 감염됐다가 치료제를 맞고 인성을 유지한 이들을 일컫는다. 하지만 완치는 아니고 매일 주사를 맞아야만 좀비가 되지 않는다. 스페인과 캐나다 합작영화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캐나다 배우들이 출연했다.

케이트(에밀리 햄프셔)는 리턴드 관리 병동에서 일하는 의사. 하지만 남편 알렉스(크리스 홀든리드)도 환자란 비밀은 숨긴 채 산다. 갈수록 사회적으로 리턴드 찬반 여론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만든 치료제 재고량이 얼마 남지 않았단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다.

스릴러와 ‘썸’을 타는 마인드스케이프처럼, 리턴드 역시 전형적인 좀비물과 거리를 둔다. 소재만 갖다 썼을 뿐 딱히 끔찍한 장면도 거의 없다. 영화가 좀비 자체가 아닌, 세상의 반응에 주목했기 때문. 두 영화 모두 독특한 비틀기를 통해 어떤 실체의 이면을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

리턴드는 치료제가 떨어지며 점점 바닥을 보이는 인간의 추악한 도덕심을 제대로 까발린다. 평소엔 우정 사랑 평화를 외치다가도 급할 땐 돌아서는 이들이 얼마나 많나. 감독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감정의 과잉 없이 표현한다. 그게 바로 인간이라고.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