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1일 건국 65주년… 마오쩌둥의 초심 숨쉬는 ‘솽칭별장’ 르포
베이징 시 샹산 공원에 있는 ‘솽칭 별장’의 마오쩌둥 집무실. 현수막에 ‘중국 중앙공산당이 샹산에 들어온 지 65주년’이라고 쓰여 있다. 입구 오른쪽에는 공산당 입당 선서문을 세웠다. 별장으로 가는 산길 초입에 세운 표지판(작은 사진)에는 길 이름과 ‘이자성같이 돼서는 안 된다’라고 써 놓았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중국이 국경절 하루 전날을 열사기념일로 지정한 것은 애국주의를 강화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은 건국 이후 개혁개방을 거치며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했지만 빈부, 도농, 계층 간 격차가 커지고 권력형 부패가 심해지는 등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다. 시 주석이 당과 국가의 존망을 놓고 반부패 투쟁을 벌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베이징 시 샹산 공원에 있는 ‘솽칭 별장’의 마오쩌둥 집무실. 현수막에 ‘중국 중앙공산당이 샹산에 들어온 지 65주년’이라고 쓰여 있다. 입구 오른쪽에는 공산당 입당 선서문을 세웠다. 별장으로 가는 산길 초입에 세운 표지판(작은 사진)에는 길 이름과 ‘이자성같이 돼서는 안 된다’라고 써 놓았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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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입구에서 10분가량 걸어 들어가면 ‘별장’의 진입로인 ‘훙써진징루(紅色進京路·공산당 베이징에 진입길)’가 나온다. 길 입구에 세워진 문구는 당시 마오와 공산당의 순수했던 마음을 알려준다.
“우리는 베이징에 시험을 보러 간다. 우리는 이자성이 되어서는 안 된다.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
마오가 1949년 베이징 입성 직전까지 웅거하며 전투했던 허베이(河北) 성 시바이포(西柏坡)에서 출발하기 직전 남긴 말이다. 한족이었던 이자성은 명나라 말기 부패와 수탈에 항거해 농민반란을 일으켜 명 왕조를 무너뜨리고 베이징을 차지했지만 이후 권력에 취하고 향락에 빠져 만주족에게 쫓겨나면서 청나라에 안방을 내줬다.
마오는 공산당 7차 당대회 2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1949년 3월)에서도 ‘공산당의 두 가지 의무’로 △겸손 신중하고, 교만 경박하지 않음 △검소하고 어려움을 견디고 분투하는 정신 유지 등을 제시했다. 이 문구도 마오가 집무실로 사용한 건물 앞에 게시돼 있다. 당시 이 의무감에 투철했던 마오가 오늘의 중국을 보면 어떤 평가를 내릴지 궁금증이 더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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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