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잘 만난 덕에 金 쐈어요”… 女 더블트랩 김미진-손상원 부부
“여보, 수고 많았어” 인천 아시아경기 사격 여자 더블트랩 개인전 금메달을 딴 김미진(왼쪽)이 자신에게 새로운 사격 인생을 열어준 남편 손상원 KB국민은행 감독(오른쪽), 아들 연호 군(6)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대한사격경기연맹 제공
김미진은 25일 경기 화성의 경기종합사격장에서 열린 사격 여자 더블트랩 개인전에서 110점을 쏴 108점을 기록한 장야페이(중국)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미진의 기록은 국제사격연맹(ISSF)이 경기 규칙을 개정한 2013년 이후 처음 나온 공식 세계기록이다.
그는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소총 선수였다. 국제대회 메달은커녕 국가대표로 뽑힌 적도 없다. 사격에 소질이 없다고 느낀 그는 일찌감치 선수 생활을 접고 교사가 되기 위해 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사격과 남은 유일한 끈은 사격장 아르바이트였다. 그는 2000년대 초반까지 태릉사격장 내에 있던 태릉클레이사격장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클레이(산탄총) 사격 자세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김미진은 소총과는 또 다른 클레이의 매력에 단숨에 빠져 버렸다.
광고 로드중
“여보, 金 기운 받아” 이 부부, 보고만 있어도 미소짓게 된다. 24일 인천 아시아경기 사격에서 금메달을 딴 나윤경(오른쪽)이 25일 충북 진천선수촌을 찾아 남편 황정수에게 금메달 기(氣)를 전했다. 사격계의 잉꼬 부부로 소문난 이들은 아시아경기 동반 출전을 넘어 동반 메달을 노리고 있다. 진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소총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재능이 더블트랩에서는 만개했다. 클레이로 전향한 지 1년 만에 국가대표가 됐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 더블트랩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고, 2010년 광저우 대회 더블트랩 단체전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안방에서 열린 인천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자기에는 맞는 종목,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준 남편 덕이었다. 김미진은 “꿈으로만 생각했던 우승을 하게 되어 정말 기쁘다. 가족들에게 이 기쁨을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미진은 이보나(한화갤러리아), 손혜경(제천시청)과 함께 출전한 단체전에서도 314점으로 중국(315점)에 이어 은메달을 추가했다.
광고 로드중
男 스키트 황정수-女 공기소총 금메달 나윤경 부부
“여보, 金 기운 받아” 이 부부, 보고만 있어도 미소짓게 된다. 24일 인천 아시아경기 사격에서 금메달을 딴 나윤경(오른쪽)이 25일 충북 진천선수촌을 찾아 남편 황정수에게 금메달 기(氣)를 전했다. 사격계의 잉꼬 부부로 소문난 이들은 아시아경기 동반 출전을 넘어 동반 메달을 노리고 있다. 진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하루 전 인천 아시아경기 사격 여자 공기소총 50m 복사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나윤경(32·우리은행)은 25일 오전 충북 진천선수촌을 찾았다. 남자 스키트 사격 국가대표로 인천 아시아경기에 출전하는 남편 황정수(32·울산북구청)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만남은 짧았다. 훈련을 잠시 지켜보다가 선수촌 인근 음식점으로 옮겨 함께 식사를 한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나윤경은 “같이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출전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선발전 때만큼만 쏘면 충분히 메달권이다. 내 금메달의 기운이 남편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정수는 29, 30일 경기 화성 경기종합사격장에서 열리는 경기에 출전한다.
광고 로드중
○ 사격이 맺어준 인연
둘은 고3이던 1999년 처음 만났다. 서울 태릉사격장 무기고에서 소총을 꺼내던 나윤경이 황정수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황정수는 “첫눈에 아내에게 반했다. 총을 집어 드는 모습이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지나갔다”고 회상했다. 나윤경은 처음 황정수의 사랑 고백을 거절했다. 그는 “너무 어리기도 했고 운동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둘이 연인으로 발전한 것은 대학 3학년이던 2002년이다. 둘은 나란히 체코에서 열린 세계대학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그 대회에서 둘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윤경은 일편단심 자신만 바라보던 황정수에게 마음을 열었다. 그로부터 8년간의 열애 끝에 둘은 2010년 결혼했다. 권오근 우리은행 사격팀 감독은 “둘 다 그렇게 착하고 성실할 수가 없다. 사격계에서는 가장 예쁜 사랑을 하는 커플로 통한다”고 말했다.
○ 언제나 애틋하다
소속팀도 다르고 세부 종목도 달라 두 사람은 자주 만나지 못한다. 시즌 중에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주말부부다.
그렇지만 국가대표가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함께 대표팀에 소집되면 훈련을 마친 뒤 저녁에 만날 수 있다. 그래봐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거나 산책을 하는 정도지만 그것만으로도 둘은 행복했다.
인천 아시아경기에서는 잠시 떨어져 있다. 소총 종목은 인천에서 열리지만 클레이(산탄총) 종목은 경기 화성에서 열린다. 클레이 선수단은 숙소도 인천이 아니라 진천선수촌이다.
그 대신 둘은 문자메시지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24일 경기 전에도 나윤경은 ‘많이 긴장된다’는 문자를 보냈고 황정수는 ‘편하게 해, 잘하든 못하든 네가 최고’라고 답장을 보냈다.
시즌이 끝나면 둘은 함께 해외로 긴 여행을 떠난다. 매년 새롭게 떠나는 신혼여행이다. 올해 허니문 장소는 미국이나 싱가포르로 잡았다.
○ “2세는 권총 시킬까 봐요.”
올림픽과 아시아경기는 2년 단위로 열린다. 대회에 집중하느라 둘은 아직 2세를 갖지 않았다. 나윤경이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와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해야 했기 때문이다.
요즘 둘의 최고 관심사는 단연 2세 출산이다. 각자는 자기 종목의 어려운 점을 너무 잘 안다. 나윤경이 하는 소총은 총도 무겁고 사격복도 무겁다. 부속물 등 장비는 거의 20kg이나 된다. 황정수의 종목인 스키트는 여름 한낮 땡볕에서 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서 뜻을 모은 게 권총이다. 둘은 “2세가 태어난다면 실내에서 경기를 하면서 장비도 그리 많지 않은 권총을 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둘 사이라면 당연히 ‘명사수’가 탄생하지 않을까.
인천=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