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마터호른 초등 150주년’을 맞아 체르마트 마을이 제작한 앰블럼. 체르마트 관광청 제공
알프스의 마터호른 봉(해발 4478m)은 스위스와 이탈리아가 공유하는데 희비가 교차한다. 한마디로 스위스는 웃고 이탈리아는 운다. 이 멋진 모습이 체르마트가 있는 스위스 쪽의 전유물이어서다. 이탈리아 쪽에서 보면 영 밋밋해서 저게 마터호른일까 싶을 정도다.
언어도 달라 이름도 각각이다. 마터호른은 스위스가 붙인 독일어 이름이다. 이탈리아에선 몬테체르비노라 부른다. 산 아래 마을도 두 개다. 스위스엔 체르마트가 있고 이탈리아엔 브뢰유체르비니아가 있다. 국경선은 마터호른 봉 아래 고르너그라트 능선. 테오둘패스(고개·3292m)가 그걸 가로지르며 두 마을을 잇는다. 능선은 한겨울에 눈으로 덮인다. 마터호른 아래 빙하의 스키장은 이탈리아 마을까지 두루 아우르므로 스키어는 두 나라를 무시로 오간다. 거기엔 국경 표지는 물론 어떤 장애물도 없다.
뒤늦게 그걸 안 휨퍼. 홀로 테오둘패스를 넘어 체르마트로 돌아왔고, 마침 프랑스 가이드를 동반한 영국인 세 명을 만나 스위스인 부자(父子)를 더해 추격한다. 휨퍼의 승리. 이탈리아팀은 400m 아래서 휨퍼의 초등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그런데 휨퍼 팀은 하산길에 사고를 맞는다. 네 명의 추락사. 생존자는 휨퍼와 스위스인 부자 등 셋뿐이었다. 추락할 때 자기만 살려고 팀원들을 연결한 자일을 끊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었다. 이 사고로 알피니즘은 한동안 경색된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이 등반의 위험성을 지적한 게 계기다.
하지만 체르마트 마을은 달랐다. 휨퍼의 초등을 계기로 산악관광지로 각광받는다. 마을은 마터호른 봉을 보거나 오르려는 이들로 북적댔다. 1888년 철도가 놓이게 된 건 그 덕분. 1930년엔 전기철도로 바뀌는데 지금도 생모리츠와 체르마트를 오가는 ‘글레이셔 익스프레스(Glacier Express·빙하특급)’가 그것이다.
이 체르마트를 이달 12일 현대중공업 팀 씨름선수 네 명이 찾았다. ‘스위스 산악레슬링 축제’에 초청받은 것이다. 이들은 스위스씨름 ‘슈빙겐(Schwingen)’ 선수와 시범경기를 벌였다. 우리끼리 겨루며 한국 전통 씨름도 알렸다. 슈빙겐은 씨름과 90%쯤 같다. 다른 점이라면 평상복 차림에 샅바용 반바지를 겹쳐 입는 것, 샅바를 잡은 상태로 10∼12분 내에 상대의 양 어깨를 모랫바닥에 닿게 해야 한 판을 얻는 것 정도다. 나는 이런 씨름을 아이슬란드에서도 봤다. 거기선 팬츠 차림의 맨몸에 가죽샅바를 쓰는데 우리 씨름과 다르지 않다. 5000년 역사의 우리 씨름과 어떻게 닮게 됐는지 궁금증을 더한 현장이었다.
그런데 같은 날 우리 국회의원회관에선 ‘입씨름’이 벌어졌다. 무대는 씨름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방안을 찾으려는 포럼. 대한씨름협회장이 “국회의원들이 입씨름 대신 실제 씨름으로 겨루면 어떻겠느냐”고 농담조로 한 인사말이 발단이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면전에서 조롱한다’며 발끈했다. 글쎄, 이 정도는 유머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도 싶은데….
―체르마트(스위스)에서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