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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측이 배설 논란에 신중한 이유

입력 | 2014-09-22 06:55:00

명량해전을 스크린으로 옮겨 1750만 관객 흥행에 성공한 ‘명량’의 한 장면. 영화에는 배우 최민식이 연기한 이순신 장군을 비롯해 안위, 이회 등 역사 속 실존인물이 다수 등장한다. 사진제공|빅스톤픽쳐스


■ 표현의 자유와 사자의 명예, 무엇이 더 중할까

“앞으로 나올 역사물의 제작 기준 될 것”
역대 최대 흥행 사극영화 상징성 ‘부담’
배설 후손 측 민사소송까지 고려 ‘압박’


1750만 흥행 신드롬을 만든 영화 ‘명량’이 난제를 만났다. 영화에 등장하는 임진왜란 당시 실존인물 배설 장군의 후손들이 연출자 김한민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등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가운데 ‘명량’ 측이 입장 발표에 고심하고 있다. 이번 논란이 향후 사극영화 제작에 있어 역사왜곡의 허용한계를 제시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 때문이다.

● ‘명량’ 입장 발표 왜 늦어지나

영화에서 배설은 최민식이 연기한 이순신 장군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뒤 활에 맞고 죽는 인물로 그려졌다. 이에 배설 후손인 경주 배씨 문중은 영화가 사실을 왜곡했다고 주장하며 이달 15일 김 감독 등을 고소했다. 19일 경북 성주경찰서에서 진행된 고소인 조사에서도 이들은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는다면 법적인 처벌을 원한다”고 강경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조선시대 배설 장군의 후손들이 사자명예훼손을 이유로 영화 ‘명량’ 제작자를 고소했다. 사진제공|채널A


‘명량’ 측은 피소 이후 일주일 동안 이렇다할 입장을 내놓지 못한 채 고민만 거듭하고 있다. ‘사과’를 하거나 반대로 ‘맞대응’도 하지 않는 데는 여러 역학관계가 맞물렸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최근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영화가 급증하는 분위기 속에 ‘명량’이 내놓는 입장이 향후 전반적인 사극 제작 분위기에 어떻게든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명량’은 누적관객 1750만 명이라는 폭발적인 흥행을 이룬 대작으로, 영화계는 물론 대중문화 전반에서 여전히 뜨거운 관심을 얻고 있다.

‘명량’ 제작사 빅스톤픽쳐스도 입장 발표가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작사 한 관계자는 21일 “이번 사안은 단순히 ‘명량’에 관련한 문제만은 아니라고 판단한다”며 “우리 결정이 앞으로 수많은 창작자와 역사가, 학계, 관객이 보게 될 새로운 역사물에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럽다”고 밝혔다.

실제로 현재 제작되는 사극 중 실존인물이 등장하는 영화는 ‘사도’ ‘도리화가’ ‘순수의 시대’ ‘남한산성’ 등 여러 편이다. TV 사극은 더 많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사극 가운데 실존인물이 나오지 않는 작품을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다. 이런 제작 환경에서 ‘명량’이 느끼는 부담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명량’이 가진 상징성은 아주 크다”며 “‘명량’이 어떤 식으로 입장을 정리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사극들이 실존인물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범위가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짚었다.

● 표현의 자유 vs 사자 명예훼손

영화 속 실존인물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8월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 개봉 당시 실제 사건을 겪은 해군 장교와 유가족들은 ‘영화가 사건과 인물을 왜곡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이 보다 앞서 2004년에는 영화 ‘실미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실제 유가족이 사자명예훼손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모두 기각됐다. 법원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한 결과다.

물론 이 같은 분위기가 ‘명량’에 그대로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명량’은 개봉 전부터 철저하게 역사에 입각해 만든 작품이란 사실을 강조해왔다. 배설 문중 역시 “제작진은 철저한 고증을 거쳤다고 강조했지만 후손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로 봐달라는 자기 편의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배설 후손 측은 ‘명량’을 상대로 민사소송까지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명량’ 제작진 역시 더는 입장을 미룰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입장을 곧 정리해 알리겠다”고 밝힌 만큼 이번 논란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트위터@madein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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