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수 논설위원
“세금 더 뜯을라고 그러는 거여.”
“담배 사재기하면 5000만 원 벌금이라잖어. 허이구 참.”
국민 건강을 위해 담뱃값은 올려야 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국민이 ‘꼼수 증세’라고 생각하고 정부 말을 믿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뻔히 보이는 상황에 대해 정부가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2004년 정부가 담뱃값을 500원 올릴 때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표는 반대했다. 국회에서 법 개정안 표결을 할 때 박 대표는 기권했고 당시 최경환 의원은 반대표를 던졌다.
박 대표는 이듬해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세금을 올리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소주와 담배는 서민이 애용하는 것들 아닌가”라고 따졌다. 물론 10년 사이에 생각과 상황이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당시 한나라당은 “국민생활이 어렵고 흡연층이 저소득층에 밀집한 상황에서 담뱃값 인상은 소득역진(逆進) 정책인 데다 인상분의 용처가 불분명하다”며 공식 반대했다. 지금 그때와 달라진 게 뭔가.
박 대통령은 “증세를 할 때는 국민대타협위원회를 만들어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던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담뱃세 인상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처음 말을 꺼낸 뒤 입법예고까지 10일 만에 속전속결로 해치워졌다. 40일 이상이어야 하는 입법 예고기간은 4일로 끝났다. 사실상의 증세(增稅)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양해를 구하기는커녕 박 대통령과 최 부총리는 그제 또다시 “담뱃값 인상은 세수 때문이 아니라 국민건강 때문”이라고 강변했다.
경제 주체들이 정책을 신뢰하지 않으면 경제는 살아날 수 없다. 그런데 최근 최 부총리가 내놓은 정책들을 보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그는 취임 초기 ‘가계소득 증대를 통한 경제 활성화’를 내걸었지만 “말만 그럴 듯하지 알맹이가 없다”는 평가가 점점 늘고 있다.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은 오히려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줄인다. “법인세 인상은 경제 활성화에 역행한다”고 ‘사내 유보금 과세’라는 편법을 쓰면서 서민의 세금만 올려 소비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다.
박 대통령과 최 부총리는 입만 열면 민생과 경제를 말하지만 사실 이 정부가 경제혁신과 성장을 위해 새로 만든 정책은 거의 없는 셈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규제완화, 해외투자 유치 등 풀어놓으면 대강 어떻게 되겠지 하는, 남의 힘을 빌려 손 안 대고 코 풀려고 하는 정책이 너무 많다”고 비판했다. 그의 말에 다 동의하진 않지만 정부가 산업 혁신과 미래 먹을거리 발굴에 좀 더 힘을 쏟을 필요는 있다.
최 부총리는 경제 부흥을 위해 ‘지도에 없는 길’도 가겠다고 했다. 길이 정해져 있는 여행도 동반자가 믿음직해야 같이 떠난다. 더구나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면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된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