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
그런데 청주를 정종(正宗)이라고 하는 사람이 꽤 많다. 정종은 국립국어원 웹사이트에 표제어로도 올라 있다. ‘일본식으로 빚어 만든 맑은술’이라고 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청주와 똑같다. 사전대로라면 청주와 정종은 동의어다.
납득하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국립국어원은 정종의 뜻풀이에 ‘일본 상품명’이라는 말을 덧붙여 놓았다. 정종은 술의 종류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특정 상품의 이름’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자.
1883년 후쿠다라는 사람이 부산에 일본식 청주 공장을 세운 이후 조선에도 여러 종류의 일본 청주가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정종이 제일 잘 팔려 부지불식간에 ‘정종=일본 청주’라는 등식이 성립된 것이다. 제품명인 라이방을 선글라스로, 바바리를 트렌치코트로, 봉고를 승합차로, 포클레인을 굴착기라는 뜻으로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청주는 정종이 아니다. 하물며 조상에게 올리는 술을 ‘정종’이라고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광복 이후 일본말 순화 운동이 많은 성과를 거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술의 상품명인 정종을 표제어로 두고 있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청주 논쟁은 잠시 접어두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 마음은 벌써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