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히 버리니, 비로소 얻더라
공연업계의 글로벌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태양의 서커스’에는 스타 곡예사와 동물 묘기가 없다. 조련사 훈련비와 스타 곡예사 영입 비용을 예술성을 확보하는 데 투자했다. 태양의 서커스 중 한 장면.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인류 역사와 함께했지만 다른 장르에 밀려 추락하던 서커스산업에서 태양의 서커스는 연매출 1조 원, 순이익 25%를 내며 공연업계 최강자로 떠올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블루오션의 개척, 적극적인 마케팅, 첨단 정보기술(IT) 활용 등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성공의 출발점이 전략적 사고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명확히 결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서커스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 인식되던 스타 곡예사와 동물 묘기를 버린 것이다.
서커스산업의 쇠퇴로 스타 곡예사의 수가 줄어 이들을 섭외하는 데는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었다. 더욱이 동물 묘기의 경우 숙련된 동물 조련사와 동물 확보에 따른 비용뿐만 아니라 동물보호단체의 압력과 비난에도 대응해야 했다. 기존 서커스단은 수익이 악화되는 상황에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스타 곡예사와 동물 조련사에게 많은 비용을 지불했다. 그러나 태양의 서커스는 이를 과감히 버림으로써 서커스에 스토리와 예술성을 가미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형식의 서커스를 선보였다. ‘버려야 비로소 얻게 된다’는 말의 의미를 직접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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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세계 최고의 컴퓨터 회사였던 DEC는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에 망한 기업이다. DEC는 컴퓨터산업의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1998년 결국 컴팩(컴팩은 나중에 HP에 인수됨)에 인수됐다. 1992년 DEC는 임원들을 모아서 회사의 미래 방향을 결정하기 위한 전략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는 크게 세 가지 전략이 나왔다. 최고경영자인 켄 올슨은 선택을 내리지 못했고 회의 참가자들에게 합의를 요구했다. 이는 완전한 실수였다. 세 가지 의견이 모두 섞이면서 이도저도 아닌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경영진은 ‘선택’이라는 어려운 일을 피하고 참석자의 의견도 무시하지 않는 해결책을 냈다. 하지만 그 대가로 회사는 회복 불능이 됐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전략적 의사결정은 상충 관계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맥도널드는 스피드와 일관성으로 큰 사랑을 받는 브랜드다. 맥도널드의 가치사슬은 스피드와 일관성에 초점을 맞춰 구성돼 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들어 성장이 정체되자 맥도널드는 고객이 자신의 버거에 들어갈 재료를 선택 주문할 수 있도록 했다. ‘Made for You’ 캠페인이 그것이다. 이로 인해 모든 매장의 햄버거 조리 공간을 개조해야 했는데 이에 소요된 비용만 5억 달러에 달했다. 고객의 기호에 따라 버거를 만들었더니 스피드와 일관성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맥도널드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이 정책을 포기했다.
왜 이토록 선택이 어려운가. 유능한 경영자들이 선택을 미루는 이유는 무엇인가. 선택에 따르는 심리적 조직적 정치적 장애물 때문이다. 경영자를 포함해 인간은 누구나 선택을 회피하는 성향이 있다. 왜냐하면 선택에는 위험이 따르고, 하나를 선택하고 버린 것에 대해 미련이 남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선택을 하지 않고 여러 대안을 계속 갖고 있으면 나중에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거나 더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심리도 한몫을 한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좀 더 확실해지고 그러면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변수가 생기고 불확실성은 줄어들지 않는다.
선택과 포기는 동전의 양면이다. 버림과 포기에는 자원 배분의 변화가 따르기 마련이며 이는 조직적 난관과 고통을 수반한다. 하나를 버리면 손해를 입는 집단이나 사람들은 이에 반발한다. 선택을 한다는 것은 이런 조직적 정치적 난관을 헤쳐 나갈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인텔 창업자 앤디 그로브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메모리사업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하고 1년이 지나서야 실제로 철수할 수 있었다고 했다. 경영진을 비롯한 엔지니어, 영업사원, 고객 등을 만나 설득하고 타협하는 데만 이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는 이때의 고통을 훗날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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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의 출발점은 ‘버림’이다. 태양의 서커스가 새로운 형식의 세련된 서커스를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서커스의 알파와 오메가였던 스타 곡예사와 동물 묘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선택이다. 포기와 버림의 의미를 이해할 때 전략은 기업에서 생명을 얻게 된다. 고르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다. ‘버려야 얻을 수 있다.’
허문구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 moongoo@knu.ac.kr
정리=정지영 기자 jjy016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