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의 어느 날,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를 만났다. 그는 평일 아침이면 MBC 라디오 <윤대현의 마음연구소>에서 인간심리와 정신치료, 마음훈련과 관련된 이야기를 청취자에게 들려준다.
5분의 짧은 시간이지만, 하루를 시작하면서 듣는 그의 이야기는 하루를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 우리는 강남 테헤란로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힐링’이라는 주제 아래 그 많고 많은 산책길 중에 왜 하필 테헤란로를 선택한 것일까? 그는 매일 10분씩 도심 속 산책을 즐긴다고 한다.
“휴가를 이야기하는 바캉스의 어원이 ‘자유를 찾다’인데요. 뇌과학 측면에서 보면 바캉스는 ‘detachment’입니다. 우리말로 바꾸면 ‘삶의 이격’, 또는 ‘내려놓음’ 등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업무를 볼 때 활성화되는 전투 시스템을 잠시 끄고 충전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것이 뇌과학 측면에서의 바캉스입니다. 멋진 환경에서 산책을 해도 충전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 일한 것과 같죠. 그러나 도심에서도 충전시스템을 활성화할 수 있다면 뇌의 바캉스가 가능합니다.”
최근 실리콘밸리 경영자들은 뇌휴식 훈련의 일종인 ‘disconnect to connect’ 훈련을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세 번 깊게 호흡하며 그 호흡의 흐름을 느끼기, 조용한 곳에서 밥 음미하며 먹기, 하루 10분 사색하며 걷기, 일주일에 한 번 벗과 힐링수다하기, 슬픈 영화나 슬픈 작품 주 1회 감상하기, 일주일에 3편의 시 읽기, 스마트폰 집에 두고 당일치기 기차 여행하기다.
윤대현 교수는 자신만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한 발짝 물러나자신의 뇌가 만드는 생각과 감정을 모니터링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제 우리는 뇌에서 무언가를 지시하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내 마음을 잘 모니터링 하기 위해서는 우선 뇌에서 흘러나오는 내용들에 즉각 반응하는 것을 잠시 끊고 살며시 내 마음을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런 뇌 훈련은 단순해 보이지만 연습을 하다 보면 자신의 뇌가 만들어 내는 생각과 감정이 하얀 스크린에 비추어지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고 윤교수는 말한다.
“자유를 찾는다는 어원을 가진 바캉스. 심리학적 자유는 내가 나를 바라보는 여유에서 찾아와요.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여유가 창조적 마인드를 갖게 하고 비즈니스 성공도 가져온다는 것이 최신 뇌과학의 주장이죠.”
내 마음에 따뜻한 감성 에너지 채우기
과연 ‘잘 사는 것’은 무엇일까? 열심히 사는 것? 우리를 열심히 살도록 하는 내 마음의 스트레스 시스템은 ‘미래를 대비해 지금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고 우리의 마음을 재촉한다.
그러나 앞만 보고 달리는 인생은 쉽게 피로가 찾아오고, 막상 성취한 인생의 소중한 콘텐츠도 의미 없이 허무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는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는 ‘감성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 인생의 소중한 것들을 잘 즐기기 위해선 내 마음에 따뜻한 감성 에너지가 차 있어야 합니다. 삶의 내용은 변한 것이 없는 데도 내 마음의 에너지가 충전되어 있으면 내 삶에 대한 해석이 긍정적으로 바뀌어 긍정성과 행복감이 증가합니다.”
우리 마음의 감성을 발전시키는 항스트레스 시스템을 ‘연민시스템’이라고도 한다. 삶에 스트레스가 크고 고되어도 연민시스템이 뇌 안에서 잘 작동되면 사람들은 웃어가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연민시스템이 잘 작동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봄날의 따뜻한 햇살이 기억나세요?’라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꿀 먹은 벙어리 반응을 보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름과 겨울엔 스트레스 시스템이 주로 작동해요. 추운 날씨와 무더운 더위는 생존을 위협하는 신호라고 뇌가 받아들이기 때문이죠. 여름과 겨울이 긴장의 계절이라면 봄과 가을은 이완의 계절, 연민의 계절입니다. 봄 햇살의 따뜻함에 내 마음이 반응하지 않는다면 연민시스템의 작동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연민 시스템이 잘 작동되면 계절의 변화에 뇌가 자동으로 반응한다. 따뜻한 햇살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나만을 위한 10분 바캉스’로 하루 10분 사색하며 걷기를 권한다.
방법은 ‘하늘, 사람, 날씨’ 세 키워드를 활용하는 것이다. 먼저 하늘을 보고, ‘오늘 하늘이 파랗구나’하고 느끼고, 다음은 사람을 바라본다. ‘저 사람은 왜 행복해 보일까, 저 사람은 우울해 보이는군’ 등의 관찰이다. 그리고 날씨를 느껴 본다. ‘오늘은 어제보다 선선하구나’라고 말이다.
“이렇게 한가한 자극을 뇌에 줄 때 스트레스 톤이 떨어지며 항스트레스 시스템인 연민시스템이 작동해요. 마음의 발전소인 연민시스템이 작동될 때 감성 노동에 지친 뇌에 감성 에너지를 재충전시켜 줍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의 삶의 의미도 감성 기억에 가치로 저장되는 거죠. 오늘부터 하루 10분 사색하며 걷기 어떠세요?”
마음 에너지 방전, 소진증후군 시대
그는 최근 발행된 <윤대현의 마음성공>이라는 책에서 ‘소진증후군’에 관해 이야기한다. 소진증후군은 마음의 에너지가 모두 방전된 상태로 영어로 ‘burnout syndrome’이라고 한다.
뇌의 에너지가 다 타버린 상태인데, 이처럼 소진된 상태의 개인이 모이면 피로한 사회가 된다. 역으로 이런 피로한 사회는 개인을 소진시키기에 이른다. 개인, 사회시스템이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다 보니 소진된 마음이 전염병처럼 늘고 있다.
“소진증후군이 찾아오면 세 가지 문제가 뚜렷하게 나타나요. 먼저 의욕이 떨어집니다. 오늘 어떤 분에게 사연을 받았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열심히 취업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아무런 의욕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다음으로 성취감이 떨어집니다. 노력해서 무언가 목표를 달성해도 만족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공감 능력이 현저히 결여됩니다. 공감은 남을 위로하는 능력이면서 내가 남에게 위로받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내가 지쳤을 때 상대방에게 따뜻한 감성 에너지를 받아 충전을 해야 하는데 주는 것은 고사하고 받는 것도 잘 안 되는 마음 상태가 된다는 것이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뇌 안에 있는 충전 시스템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스트레스 시스템이 ‘아직 멀었어, 더 달려가. 아직은 쉴 때가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준다면 연민시스템은 ‘넌 이미 근사해. 좀 쉬어가’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준다. 그런데 이런 두 시스템 사이에 균형이 깨져 스트레스 시스템만 작동하면 소진이 오게 되는 것이다.
“연민집중치료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내 뇌의 연민시스템을 활성화하자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을 들어보면 좀 허무하기도 합니다. 바로 나를 촉촉하게 위로해 줄 수 있는 좋은 관계 자주 갖기,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시간 갖기, 그리고 좋은 문화 콘텐츠와 만나기입니다. 심심한 내용들이지만 막상 내 삶을 보면 이런 것들과 멀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윤대현 교수는 삶의 순간순간을 여행이라 생각한다. 일상을 그렇게 보내다 보니 삶이 긍정에너지로 채워질 수밖에. 그는 우리 뇌가 따뜻한 대상과 연결이 되어야 충전이 되고 힐링 호르몬이 나온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음에 감성 에너지를 채우는 것이다.
사진·기사제공 : M미디어 라메드, 김효정 기자, 권오경 사진기자 (www.egih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