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토니 모리슨 지음·송은주 옮김/244쪽·1만3000원·문학동네
인종주의라는 비극의 기원을 소설로 그려낸 작가 토니 모리슨. 동아일보DB
레베카조차 남편 없이는 사실상 법 바깥에 놓인 존재였으니, 여자 하인들이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딘가에 예속돼야 했다. 여러 인물의 이야기 가운데 노예의 자식으로 태어나 주인의 빚 대신 제이컵에게 넘겨진 플로렌스의 목소리가 또렷하다. 어머니에게 버려졌다는 상실감에 시달리는 플로렌스는 자유를 누리는 흑인 대장장이에게 사랑을 갈구한다. 플로렌스는 그에게 노예처럼 종속되기를 바라지만 사랑을 잃고 비로소 자유를 깨닫는다.
마지막 장은 플로렌스의 어머니가 전하는, 딸에게 전해지지 않을 고백이다. 어머니는 성적 학대에서 딸을 구하기 위해 ‘마음속에 짐승이 없는’ 제이컵에게 딸을 데려가 달라고 애원한 것이다. 어머니는 말한다. “다른 이를 지배할 힘을 넘겨받는 것은 힘든 일이지. 다른 이를 지배할 힘을 빼앗는 것은 잘못된 일이고. 자신을 지배할 힘을 다른 이에게 넘겨주는 것은 사악한 일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