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신 주독일 대사
수용소 정문을 들어서니 많은 학생이 진지한 표정으로 인솔교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메모를 하고 있었다. 필자를 안내한 수용소 관계자는 수용소 내 시설들을 보여주면서 당시의 참혹했던 실상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는 고문실, 생체실험실, 시체소각장 등을 안내할 때는 “인간이 어떻게 이런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독일인들은 이처럼 자신들의 역사적인 과오를 부정하거나, 감추거나, 축소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널리 알리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학교 교과 과정으로도 9∼13학년의 나치 강제수용소 견학을 의무화하고 있다. 나치 만행과 관련한 기념관과 박물관들도 많이 만들어 무료로 상시 개방하고 있다.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 있는 전쟁기념관에서는 나치 정권 당시의 사진과 각종 자료를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 2005년 베를린 시내 중심가에 조성한 학살 유대인 추모공원은 역사적 기억과 이에 대한 책임을 잊지 않으려는 독일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치 정권이 유대인을 독일 내에서 추방하고 몰살시킬 목적으로 1942년 1월 베를린 인근 ‘반제’에서 소집한 회의(‘Wannsee Conference’) 현장도 원형대로 복원해 공개하고 있다. 심지어 아우슈비츠 등에서 홀로코스트에 사용된 독가스 치클론-B 제조공장도 사진과 기록으로 남겨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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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도 독일의 정치지도자들은 나치 희생자 및 피해국을 방문할 때마다 과거 악행을 사죄하고 용서를 구함으로써 오히려 피해국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 최근 벨기에에서 열린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 기념행사 때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가장 많은 환영을 받았다. 독일의 과거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피해국에 대한 화해 노력 없이는 오늘과 같은 독일의 통일, 국제적 지위 향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수용소 문을 나서면서 독일 통일의 주역 중 한 사람인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대통령이 2차대전 종전 40주년 기념식에서 행한 연설의 한 구절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다.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자는 현재도 보지 못하게 된다.”
김재신 주독일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