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국 전문 변호사 모아 영화제작”
림석휘 싱가포르 국제중재원장(왼쪽)과 박은영 변호사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적선동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인터뷰 도중 영화 촬영 에피소드를 얘기하며 활짝 웃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영화의 줄거리는 싱가포르 공항과 법정, 로펌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중재인들의 이야기. 특이한 건 영화 속 변호사들이 모두 ‘실제 변호사’라는 점이다. 그것도 세계 10여 개국에서 온 다양한 국적의 국제중재전문 변호사들이다.
분쟁의 발생부터 해결까지 영화에 ‘국제 중재의 모든 것’을 담아 보자는 아이디어를 영화에 반영한 주인공은 림석휘 싱가포르 국제중재원장(46·여)이다. 워크숍 주최차 방한한 그는 지난달 30일 동아일보와 단독으로 만난 자리에서 영화의 후일담부터 털어놓았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변호사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게 가장 힘들었죠. 다이내믹한 국제중재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선 섭외가 가장 중요했거든요. 한 명 한 명의 일정을 잡느라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는 “변호사들이 기억력이 좋아 NG가 거의 없어서 6개월 만에 영화 촬영을 마쳤다”고 했다.
림 원장의 이런 생각에 수많은 국제중재변호인 동료들과 싱가포르 최고의 감독인 에릭 쿠 감독이 화답했다. 영화에서 한국인 변호사로 출연한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박은영 변호사(49)는 “중재 과정은 일반 재판과 달리 방청을 할 수 없다. 영화라는 툴(도구)을 이용해 국제중재를 많은 이에게 알리자는 데 공감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인구가 500만 명에 불과한 ‘소국(小國)’이지만 리콴유 전 총리의 지휘 아래 아시아 금융 물류 허브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국제중재 중심지로 떠오르며 법률서비스 강국으로 변신 중이다. 지난해 싱가포르 법무부는 기존의 국제중재원 외에 국제조정원(SIMC)과 국제상사법원(SICC)을 새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조정-중재-재판’ 시스템을 모두 갖춰 분쟁 당사자인 기업이나 정부기관이 선호하는 방식대로 분쟁을 해결하겠다는 취지다.
림 원장은 “국제중재원의 경우 공정성을 위해 싱가포르 국민 외에 한국 캐나다 필리핀 등 외국인을 중재인으로 임명하고 있다”며 “심리, 회의, 번역, 속기 등 분쟁 해결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갖춰 가장 매력적인 분쟁 해결지가 되는 것이 싱가포르의 목표”라고 전했다.
그는 싱가포르가 외국 변호사들이 활동하기에 편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싱가포르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데는 비자가 필요 없고 소득세도 매기지 않는다. 외국 로펌이 싱가포르에서 중재를 하는 경우 세금 인센티브까지 주고 있다.
지난해부터 싱가포르 국제중재원 이사를 맡고 있는 박 변호사는 “국제분쟁 사건을 싱가포르로 끌어들여 자국 변호사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다양한 국제 경험을 쌓게 해 국제법률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효과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림 원장은 기발한 발상으로 영화를 제작해 교육 효과와 홍보까지 가능하도록 만들었고 싱가포르는 외국 변호사들을 끌어들여 경제적 효과와 함께 자국 법률시장이 성장할 기회를 만들었다. 한국이 아직 이루지 못한 ‘창조경제’의 모습이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