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상, 블루칼라의 애환 그린 ‘예테보리 쌍쌍바’ 펴내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로 등단할 때만 해도 ‘박상’은 이상을 흠모해서 만든 필명이었다. 원래 이름은 박성호. 2년 뒤 박상으로 개명했다. 그는 “문장이 영롱하지 않으면 판사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을 거야”라며 인생에서 첫손에 꼽을 만한 문장으로 개명 사유서를 썼다고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소설가라는 명찰을 잠시 떼어 냈다. 자격증도 기술도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은 배달이나 경비 혹은 설거지. 월세 35만 원이 확보되지 않으면 마음도 쪼들렸다. 작가가 3년 만에 벼려낸 장편 ‘예테보리 쌍쌍바’(작가정신)에는 그가 경험한 블루칼라의 삶이 집요하게 그려진다. 디테일이 살아 있다.
“중앙대 앞 중국집, 도곡동 도시락집에서 배달을 했고 킨텍스에서 경비도 했다. 박사, 최고경영자(CEO) 출신이 월급 백십여 만원 받고 경비 일을 하더라.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남들이 시시하다고 여기는 일을 한다 해도 그 안에서 스스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하고 소설을 썼다. 그런데 다음 생에는 꼭 기술을 익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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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일을 세상은 노동이라고 부르지만 신광택에게는 승부다. 진지하게 승부에 몰두하는 신광택의 행동은 보통의 속물들에겐 한심한 ‘잉여짓’일 뿐이어서 독자를 실소하게 만든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분방한 서사, 박민규를 연상시키는 유쾌한 개그 코드가 쫀쫀하게 결합됐다.
“작가가 그러면 안 되는데… 내 소설을 보면서 나도 웃는다. 유머 코드는 포기할 수 없다. 소설의 첫 번째 기능이 재미니까. 작정하고 웃기려고 쓰는데 독자들이 안 웃으면 그만큼 처참한 게 없다. 계속 웃길 수 있는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수시로 아이디어를 짜내고 퇴고를 거듭한다.”
‘예테보리 쌍쌍바’는 작품 속에서 신광택이 읽는 가상의 소설이다. ‘스웨덴의 극사실주의 무협소설 작가 프레데릭 라르손’(스티그 라르손이 아니다!)의 장편소설로 주인공에게는 경전과도 같은 신성하고 위대한 작품이다. 200년 라이벌 가문의 두 남자가 스웨덴 예테보리를 배경으로 20년간 결투를 벌이다가 쌍쌍바를 사서 둘로 쪼개 먹고 화해한다는 줄거리다.
“예테보리에는 가본 적이 없고, 쌍쌍바는 아직도 나오는지 궁금했다. 어느 날 갑자기 서로 연관 없는 두 단어를 조합해보고 싶었다. 쓰고 보니 쌍쌍바가 주는 나눠먹는 느낌이 좋았다. 의미와 재미, 재화 이런 것들이 두루 잘 나눠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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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일을 하다 보니까 소설이 쓰고 싶어서 좀이 쑤셨다. 단 한 명의 독자라도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면, 나는 소설을 쓸 수 있다. 이번 소설집을 내면서 받은 인세로 두어 달은 생계 걱정 없이 글만 쓸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