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3사의 20년간 사극 85편 캐릭터 분석해보니…
○ 뜨는 정도전, 단골스타 이성계
이성계는 ‘대풍수’에서도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고 조연이긴 하지만 ‘신돈’ ‘신의’에서도 등장했다. ‘대장금’ ‘허준’ ‘이산’ ‘조선왕조 500년’ 등을 연출한 이병훈 PD는 “‘호시절’보다는 ‘난세’, 모두가 칭찬하는 인물보다는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인물이 극화하기에 더 매력적이다”며 “여기에 현재에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인물이 주인공이 된다”고 말했다.
○ 2000년 이후에는 정조가 대세
광고 로드중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를 쓴 사학자 이덕일 씨는 “왕이지만 당시 주류인 노론의 견제를 받아 독살의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탕평책을 통해 반대편까지 아우르는 지도자였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요소가 많다”고 했다. 여기에 정약용 박지원 김홍도 신윤복 등 익숙한 실학자와 예술가가 대거 등장하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일부에서는 정조를 부각하는 사극이 2007, 2008년 정권교체기에 집중됐다는 점을 들어 참여정부의 현실정치 상황과 연결짓기도 한다. ‘요즘 왜 이런 드라마가 뜨는 것인가’를 쓴 이영미 성공회대 초빙교수는 “당시 진보진영 실패에 대한 아쉬움이 최고 통치자이지만 늘 시험당하고 좌절했던 왕인 정조에 반영돼 있다”고 주장했다.
○ 팜파탈 장희빈, 로맨틱 가이로 변신한 광해군
조선의 팜파탈 장희빈과 그의 남자 숙종,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광해군도 20년간 각각 네 차례 드라마에서 주연급 캐릭터로 등장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역사적 인물에 대한 해석은 바뀌었다.
광고 로드중
오래전부터 여러 차례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연산군이나 사도세자, 이순신을 비롯한 위인전 영웅들은 한두 차례 등장에 그쳤다. “너무 훌륭해 재미가 없다”는 세종대왕은 ‘뿌리 깊은 나무’를 통해 인간적이면서도 이상적인 군주상을 보여주며 인기 캐릭터로 부상했다.
20년간 사극의 70% 정도가 조선시대에 집중돼 있지만 2000년 이후 삼국시대와 고려시대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작품이 늘고 있다. 특히 최근 드라마가 가장 주목하는 시기는 고려 말이다. ‘정도전’과 올해 인기를 모은 ‘기황후’ 모두 이 시기가 배경이다. 이덕일 씨는 “사극은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를 투영할 때 인기를 끈다”며 “양극화와 이념 갈등 등 고려 말과 현재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구가인 comedy9@donga.com·박훈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