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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安지원 없이 재선… 야권 유력 대선주자로 우뚝

입력 | 2014-06-05 03:00:00

[6·4 국민의 선택/서울시장]
배낭 메고… 黨로고 작게 쓰고… ‘농약급식’ 논란 딛고 나홀로 승리
시민운동 새 장 연 ‘소셜 디자이너’… “새 시대 향해 묵묵히 걸어갈 것”




운동화 목에 걸고…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왼쪽)가 재선에 성공했다. 박 당선자가 당선이 확정된 5일 새벽 종로구 선거사무실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은 부인 강난희 씨.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서울은 4년 더 시민이 시장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가 당선이 확정된 5일 0시 반 밝힌 당선 소감이다. 박 당선자는 이날 종로구 선거캠프 사무실에서 “저의 당선은 세월호 슬픔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했던 시민 모두의 승리”라며 “시민 여러분이 낡은 것과의 결별을 선택해 이제 새로운 시대를 향해 묵묵히 걸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화환 대신 거리 유세 때 가지고 다니던 배낭을 메고, 신고 다니던 운동화 한 켤레를 목에 걸었다. 부인 강난희 씨도 함께했다.

이변은 없었다. 박 당선자는 4일 오후 6시 정각 개표가 시작되자마자 새누리당 정몽준 후보를 여유 있게 앞서 나갔다. 선거 기간 내내 각종 여론조사에서 10∼15%포인트 차를 보였던 것과 비슷했다.

2011년 10월 보궐선거에 이어 이번 지방선거까지 2연패. 특히 이번 선거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의 양보로 당선됐던 2011년과는 달리 혼자 힘으로 승리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박 당선자는 선거 기간 내내 시민을 앞세웠다. 혼자 배낭을 메고 걸으면서 당의 상징색인 바다파랑 점퍼도 입지 않았다. 선거 현수막과 공보물에도 당명과 당 고로는 아주 작게 표기돼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중도층, 새정치연합의 취약지대인 강남 유권자를 붙잡는 원동력이 됐다.

정치권에서는 그가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우뚝 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나 홀로 선거’를 통해 2년 전 안 대표에게 진 빚을 청산한 데다 공교롭게도 안 대표는 지방선거 과정에서 상당한 정치적 상처를 입었다는 점에서다. 선거 기간 중 박 당선자는 “대권에는 뜻이 없다”고 했지만 ‘재선이 급선무’란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일 뿐이란 얘기가 많다.

심각 새누리당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가 4일 서울 여의도 선거사무소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를 시청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실제로 박 당선자는 2012년 2월 민주통합당(새정치연합 전신)에 입당한 뒤 당내 기반을 다지는 일에 열중해 왔다. 당의 원로 격인 상임고문단, 의원들을 만나 ‘박원순’을 알렸고, 서울 지역 의원들을 ‘관리’하면서 경선에 대비했다. 한 의원은 “술을 잘 마시지 못해 함께 술자리를 할 때면 폭탄주 서너 잔을 마시고 옆방에 드러눕곤 했다. 인간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고 전했다.

이번 선거전 막판에는 이른바 ‘농약 급식’ 문제가 터졌지만 악재로 작용하지는 못했다. 정 후보 측은 부인 강 씨의 잠적설, 출국설 등을 잇달아 제기했지만 박 당선자는 지난달 30일 사전투표장에 함께 나타나 논란을 잠재웠다. 정 후보 측은 강 씨와 세월호 실소유주인 유병언 씨 일가와의 유착설까지 제기했지만 정 후보 측의 네거티브가 너무 심하다는 인식을 굳히는 데 한몫을 했다.

경남 창녕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박 당선자의 삶은 ‘변화의 연속’으로 압축된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지만 대학 1학년 때인 1975년 긴급조치 9호 반대 교내시위로 투옥돼 제명됐고,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검사가 됐지만 이듬해 사표를 내고 고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부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등의 변호를 맡아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1990년대 초반 런던에 유학하며 영국의 시민운동을 경험하면서 1994년엔 참여연대 출범을 주도했다. 이후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 희망제작소 등 시민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2011년 서울시장에 당선되기 전 박 당선자는 자신의 직업을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라고 했다. 정치권에선 그가 재선 성공을 바탕으로 국가 설계자로 도약할 수 있을지 주목하는 분위기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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