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호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
대형 사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48년 9월, 경부선 내판역에서 급행열차 추돌사고로 25명이 사망했다. 49년 8월, 중앙선 죽령터널에서 탈선 사고로 48명이 질식사하고 100여 명이 부상했다. 1951년 7월, 다대포로 가던 편리호가 송도 앞바다에서 침몰하여 80명이 사망했다. 통학생이 많았고 인구 대비로 계산하면 이번 못지않은 규모였다. 1953년 1월, 국제시장 화재로 이재민 1만8000명이 발생했고 뒤따른 화재 재발로 가마솥 부(釜)자 탓이라는 괴담까지 퍼졌다. 어려서 겪어 지금껏 기억에 생생하다. 근자의 대형 사고도 꿰어놓으면 한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했고 세계에 유례없는 산림 재조성에 성공했다. 이런 공인된 성공 사례를 형편없이 먹칠하는 게 대형 사고다. 사고에 관한 한 우리는 파렴치하게 구태의연하다. 국보 제1호를 태워먹고 참괴한 것도 잠시다. 반성과 결의도 일과성으로 그치고 도로 아미타불이다. 참사 이후에도 줄지어 터지는 사고에 “온다 하면 소나기”라는 한숨이 터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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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에서 살다보니 생명 존중의 감각이 무디어진 것일까? 혹은 인명이 파리 목숨임을 절감케 한 60년 전의 전쟁 경험이 죽음에 대해 초연할 수 있는 특이 신경을 배양한 것일까? 그러나 정답은 가까이에 있다.
2012년도 교통사고 건수는 22만3600건이다. 이에 따른 중상자가 무려 10만1700명에 이르고 사망자가 5392명이다. 10만 명당 사망자 수 1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다. 영국의 3배, 일본의 2.4배나 된다. 사망자의 40%는 보행자다.
사고의 원인은 무엇인가. 운전자와 보행자와 여러 수준에서의 법규위반이다. 교통사고 양산사회가 동시에 대형사고 양산 사회란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법규 위반은 물론 준법정신의 결여 때문이다. 그러나 크게 또 심층적으로 보면 공격성의 방임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 존재의 이론은 헤겔, 니체, 프로이트로 발전하면서 공격성의 이론이 된다. 동양 전통이 강조한 예(禮)의 핵심은 공격성의 순치에 있다. 사고 빈발과 타인에 대한 배려의 결여 사이에는 필연의 고리가 있다. 또 이 사실이 신속한 대응에 실패한 당국의 책임을 면제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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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호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