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오피니언팀장
이 글은 국내 언론에 다수 인용 보도됐다. 온 국민이 자책과 비탄, 분노에 빠져 있을 때 그 타당성을 떠나 외국인에게 이런 지적을 듣는 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오피니언팀장을 맡고 있는 기자는 그의 기사가 국내 신문에 소개된 당일(當日) 오피니언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등 지도급 인사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정치 지도자가 없는가” “대통령과 정부는 잘하고 있는가”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지만 답은 거의 한결같았다. “할 얘기는 있지만 내놓고 하면 맞아 죽는다. 아직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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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생명이 모든 가치 중에서 제일간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살아왔더라면, 그리고 누구보다도 우리 정치인과 경제인들에게 이런 인간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돈이나 권력에 대한 욕망에 앞서 있었더라면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들어도 가슴에 새겨지는 이 말은 고 김수환 추기경께서 1995년 7월 16일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희생자를 위한 미사 강론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랬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에게는 큰 어른이자 영적지도자로 존경받는 김수환 추기경이 계셨다. 성철 큰스님도 계셨고 학계 언론계에도 여러 어른이 계셨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 어려울 때 기대고 슬플 때 위로받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영적 지도자들이 안 보인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다 보니 중국 고사를 인용하거나 영어를 섞어가며 미국, 유럽을 말하는 ‘에헴’ 하는 ‘깡통들’(김지하 시인의 표현)이 지성인으로 행세하기도 한다. 지식인들도 좌파 우파 딱지가 붙어 네 편 내 편으로 갈린 지 오래고, 인터넷에선 인신비방 유언비어 막말이 횡행하고, 국회 청문회에선 ‘신상 털기’로 잘못이 있으면 반성을 해도 기회를 봉쇄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 어디까지는 되고 어디까지는 안 되는 기준조차 합의된 바 없이, 당시의 사회적 규범이나 현실이 고려되지 않는 마녀사냥식 단죄도 일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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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오피니언팀장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