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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B급 정서와 허풍으로 사회에 결정적 한방

입력 | 2014-05-24 03:00:00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최민석 지음/272쪽·1만2000원·창비




정색한 얼굴로 풀어내는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한 세계. ‘최민석 스타일’은 끝 모르는 농담과 능청으로 빚어진다. 2010년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이자 등단작인 표제작부터 올 초 만화계간지 창간호에 수록된 단편까지 7편을 묶었다. 엉뚱하면서도 재기발랄한 상상력 속에는 우리 사회를 겨누는 작고 뾰족한 심지가 있다.

표제작의 주인공은 이주노동자들이다. 소외된 이들의 지난한 삶이라는 익숙하고 진부한 소재는 너스레를 입고 활력을 얻는다. 키르기스스탄 출신의 유순한 이주노동자 ‘초이아노프스키’(줄여서 초이→최 씨)는 가발공장 사장 안면수의 잇따른 만행을 접하면서 분노를 키워간다.

사장의 재촉에 동료가 떡을 먹다 급사하는 일이 벌어지고 경찰마저 진실을 외면한다. 분노한 ‘최 씨’를 중심으로 같은 공장의 다국적 노동자들은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해 청와대를 폭파시키기로 한다. 시티투어버스는 한국이 내세우는 친화적 이미지의 대표적 허상이니까. 버스 탈취에 성공한 일당은 버스중앙차로에 적응하지 못해 엉뚱한 곳으로 가고, 설상가상으로 버스에 탄 중국 태국 관광객 인질과 대표 한류스타가 누구냐를 두고 설전을 벌인다.

이 단편은 ‘속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이어진다. 이주노동자들이 다시 한번 탈취한 시티투어버스에서 일당과 안면수의 전생이 밝혀지고 이들은 억겁의 인연을 이어간다.

부산에 불시착한 외계인 부르스는 부산 사투리를 고치기 위해 서울말을 배우고(‘부산말로는 할 수 없었던 이방인 부르스의 말로’), 자신의 정체가 원숭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남자는 퇴화를 막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다 보니 ‘몸짱 엄친아’가 된다(‘“괜찮아, 니 털쯤은”’). 이 서른일곱 살 소설가의 B급 정서와 허풍에 놀아나는 일은 유쾌하다. 뻔뻔한 상상력이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궁금해진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