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못지키면 남들도 외면… 구한말 역사의 뼈아픈 교훈 세월호 참사 터지자… 日 “자위대 파견” 속보이는 제안, 中 관료 “조공외교 복귀” 망언 주변국, 우리 능력 과소평가… ‘한반도 분단 영구 유지가 낫다’ 오판하지 않을까 우려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유엔대사
세월호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북한과 주변 국가들의 속내를 주시해야 한다. 통일이 대박이 되기 위한 조건 중 하나는 한국의 경제력과 시스템의 선진화이다. 인권과 국민 안전을 존중하는 사회로 거듭나야만 북한 주민들에게 우리 체제로의 통일을 설득할 수 있다. 터무니없게도 지난주 노동신문은 북한에는 세월호 같은 인재(人災)는 없다며 ‘너무나 대조되는 두 현실’이란 제목하에 북한 아이들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송도원 국제소년단 야영소를 소개했다. 남한은 북한의 식량 부족, 영유아 영양지원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도 지적했다. 우리 체제와 가치관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통일의 또 다른 조건은 국제적 협력 기반의 마련인데 세월호 참사 이후 동북아 정세의 흐름을 보면 열강은 영구적 분단 한반도 유지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은 세월호 추모 기간에도 지도자들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아베 신조 총리는 위안부 강제성을 부인했으며 세월호 인명 구조에 도움이 필요하면 자기네 우익적인 국가 목적에 부합하므로 자위대를 보내주겠다고 생색을 냈다. 한편 해경이 세월호 구조에 전념하는 동안 중국의 어선들은 연평도 해역을 가득 채워 불법 싹쓸이 조업을 했다. 최근에 중국 관료들이 우리 관료에게 조공외교로 돌아가는 것이 어떠냐고 떠봤다는 보도가 있었다. 중국인 6억 명이 ‘별에서 온 그대’를 시청했음을 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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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때 우리도 유사한 경험을 했다.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려 할 때 고종은 미국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조미수호통상조약 1조를 근거로 ‘거중조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루스벨트 대통령은 고종의 요청을 거부했고 그 이유를 “조선은 절대적으로 일본의 것이다. 물론 조선이 독립국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은 1882년의 수호조약에 의해 엄숙히 주어진 것이다. 조선인 스스로 자신을 위해 할 수 없는 일을 이해관계가 없는 (미국이) 조선을 위해 시도하리라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세월호 사태로 인해 열강이 우리의 능력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며 분단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굳히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치가 강해야 한다. 국정 운영에서 장관의 비전, 열정 그리고 헌신이 그 부처의 경쟁력과 성공 여부를 좌우한다. 장관은 일단 방향이 결정되면 그 어느 조직보다 더 효율적으로 이행하는 공무원집단의 장점을 살려 이를 지혜롭게 활용해야 한다. 부처가 요동칠 정도의 과제를 주어 공무원들의 유·무능과 성실, 나태, 과잉충성 여부를 가려내어 과감하게 개혁해 나가야만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국민 10명 중 2명만이 정부를 신뢰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민족의 우수함을 발휘하여 통일을 이룰 수 있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도약할 수 있는 계기와 희망을 제공하여 통합을 이뤄야 한다. 열강은 국민에게서 나오는 진정한 힘을 바탕으로 통치하는 지도자를 무시하지 못한다.
한 미국 전문가는 한국 국민에게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지도자가 왜 없느냐고 질문했다.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 그리고 통일을 이뤄 강국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히 슬퍼할 것이다.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유엔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