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기업들 비상 경영체제로
○ 경상수지 흑자와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이 원인
2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4.4원 하락(원화가치는 상승)한 1030.6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월말 결제일을 앞둔 수출업체들이 달러화를 외환시장에 대거 내놓으면서 오전부터 하락세가 이어졌다. 3월 경상수지가 2년 1개월 연속흑자를 이어갔다는 한국은행 발표가 나온 것도 환율 하락에 일조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면 해외에서 들어오는 달러화가 많아져 달러화 가치도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대호 현대선물 연구원은 “월말, 연휴가 겹치면서 거래 물량이 집중된 데다 무역수지가 계속 흑자를 나타낼 것이라는 예상이 환율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최근 환율이 하락세를 보이는 것에 대해 외환시장 일각에서는 당국이 이제 원화강세를 차차 용인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한다. 9일 원-달러 환율이 지난 수년간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달러당 1050원이 깨졌을 때도 이 같은 분석이 나온 바 있다. 당시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환율이 우리 기업 수출에 미치는 영향도) 이전에 비해 크지 않다”고 말해 이런 해석을 부채질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외환당국은 “정부가 원하는 환율의 방향성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쏠림 현상만 막겠다는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조기 달성하기 위해 환율 하락을 용인하는 것 아니냐”는 추정도 나오지만 정부당국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 기업들은 경쟁력 비상
현대·기아자동차는 이미 1분기(1∼3월) 실적부터 환율 리스크가 현실화하고 있다. 현대차는 1분기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은 122만70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4.8% 늘었다. 이에 따라 매출액과 영업이익도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3%, 3.7% 증가했다. 그러나 원-달러 환율 하락의 영향으로 당기순이익은 오히려 2.9% 줄었다.
문제는 지난달 말부터 환율 하락이 더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원희 현대차 재경담당본부장(부사장)은 25일 실적발표회에서 “2분기(4∼6월)에도 원화가치 상승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재 경상예산 절감, 생산원가 절감 등 컨틴전시 플랜(비상경영체제)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더 급한 상황이다. 지난해 1100억 원가량의 매출을 낸 중소기업 A사는 최근 한 달 사이 이라크와 대만에서 발주한 발전소용 수전반 및 배전반 설치 프로젝트에 입찰했다 모두 떨어졌다. 원화로 비용을 계산한 뒤 달러당 1040원 안팎을 기준으로 환산한 게 패착이었다. A사 회장은 “환율이 1200원 정도는 돼야 한국 중소기업이 국제 입찰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반면 일부 업종에서는 원화가치 상승을 호재로 보기도 한다. 포스코는 전체 철강 판매량 중 수출이 절반을 넘지 않지만 원료는 100% 수입하기 때문에 환율이 하락하면 원가를 낮출 수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지난해 결산 당시에는 적용 환율을 달러당 1070원 정도로 잡았는데 지금 1030원대까지 떨어졌으니 보다 유리해진 것”이라며 “35억 달러 수준인 차입금도 원화가치가 올라가면 부담이 덜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창덕 drake007@donga.com·이상훈·강유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