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호 사회부 기자
이른바 ‘번개탄 자살’이 언론에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5, 6년 전이다. 2007년 번개탄 등 가스 중독으로 인한 자살자는 66명. 2012년 그 수는 무려 1069명으로 16배로 늘었다. 유명인이 자살하고 이를 모방하는 일명 ‘베르테르 효과’는 세계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특정 도구를 이용한 자살이 이처럼 무서운 속도로 늘어난 것은 전례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해 한 유명 연예인의 자살 시도 이후 갑자기 “번개탄 판매 제한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곧이어 ‘투신자살을 막기 위해 한강 매립하는 꼴’이라는 비아냥거림에 꼬리를 내리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면 ‘일단 뭐라도 발표하고 보자’는 식의 대응이 비판을 산 것이다.
지금처럼 ‘언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상황도 바꿔볼 만하다. 번개탄을 진열대에서 감추고 소비자가 구입할 때 시간이 걸리도록 하는 방식이다. 실제 홍콩에서는 고기 구울 때 주로 쓰는 성형탄을 이렇게 판매했더니 특정 지역에서 성형탄을 이용한 자살률이 절반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돈과 시간이 들겠지만 일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는 번개탄을 개발해 보급하는 것도 방법이다. 2011년 농약을 이용한 자살을 막기 위해 농촌진흥청이 맹독성인 ‘그라목손’ 생산을 금지하자 음독자살이 줄어든 전례도 있다.
목을 매는 것이나 투신은 물리적으로 막기 어렵다. 하지만 번개탄처럼 눈앞에 뻔히 보이는 자살 수단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 필요하면 이를 위한 공론화도 검토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9년 연속 자살률 1위에서 내려올 수 있다. 또 오랫동안 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번개탄에 씌워진 ‘살인 흉기’라는 오명을 벗길 수 있다.
이성호 사회부 기자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