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심판결… 두사건 무료 법률지원 이명숙 여성변호사회장
11일 1심 판결을 앞둔 ‘칠곡’ ‘울산’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무료 법률지원을 맡은 이명숙 변호사. 그는 “아이 한 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친부와 계모가 자꾸 언니가 동생을 죽였다고 하는데 거짓말이에요. 제발 저희를 도와주세요.”
이명숙 한국여성변호사회장(51·사시 29회)은 직감했다. 또 다른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그 ‘불편한 직감’은 어김없이 현실이 돼 버렸다. 바로 아이를 학대해 죽인 후 12세짜리 큰딸에게 누명을 씌운 ‘칠곡 계모’ 사건이다. 그 전화는 피해 아동의 친모와 고모로부터 걸려온 것이었다.
이 회장은 2008년 조두순 사건, 2011년 광주인화학교 사건(일명 ‘도가니’사건)에서도 피해자들을 도운 여성·아동·인권 전문 변호사다.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이 나오기도 했다.
“아동학대는 계모나 친부 한 명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 그리고 사회 구성원 모두의 무심함이 이런 사태를 만들었습니다. 칠곡·울산 사건처럼 끔찍한 일이 터졌을 때에만 반짝 관심을 가지죠.”
이 회장은 ‘아이를 키우는 데 때리면서 가르칠 수도 있다’는 식의 인식이 만연해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심지어 사회 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법조인, 경찰, 의사들에게까지 퍼져있다고 했다.
그는 학교와 교사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부모의 아이 학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다쳐 병원에 갔을 땐 의료진이 의심의 눈초리로 봐야 한다. 물론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경찰은 집안 문제라며 무심코 아이를 돌려보내는데, 이 또한 고쳐야 한다. 힘없고 예산 없는 아동보호기관도 키워야 한다. 참으로 해야 할 게 많다. 이 변호사의 말이다.
이 변호사가 처음부터 인권변호사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이화여대 졸업 후 1987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0년 서울에서 변호사를 시작할 때 여성 변호사는 딱 10명뿐(현재는 3700명)이었다. 여성·아동인권단체마다 무료 변론을 맡아줄 변호사에 목말라 할 때였다. 당시 그는 이혼소송을 전문으로 하고 있었다. 소송을 수없이 진행하면서 아이들이 가장 고통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회의 어두운 단면에 눈을 뜬 것이다.
올해 1월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으로 취임하자, 전국에서 도움 요청이 폭주했다. 칠곡 계모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는 혼자 힘만으로는 아동학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1월 말, 전국의 여성변호사들에게 SOS를 쳤다. ‘모두 엄마의 마음으로 나서자’라는 말에 여성변호사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3일 만에 100명이 신청한 데 이어, 현재 165명의 여성 변호사들이 공동변호인단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달 20일에는 서울지방경찰청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서울시내 31개 경찰서에 여성변호사 2명씩을 배치했다. 학대받은 아이가 경찰 조사 때부터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음 달부터는 전국 경찰서와 MOU를 맺을 예정이다.
그의 스마트폰 사진첩은 화상으로 물집이 퉁퉁 부어오르고, 살점이 뜯겨나간 아이들의 손과 다리 사진으로 가득 차 있었다. 휴대전화 화면 속, 아이의 피투성이 손목을 어루만지던 그가 말했다.
무슨 말을 더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