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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다고 사실이 바뀌지는 않아”

입력 | 2014-04-07 03:00:00

시인의 아버지
[잊지 못할 말 한마디]윤병무 시인




윤병무 시인

37년 전, 내가 국민학교(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3월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가정 환경을 조사한다는 명분으로 교실에서 담임교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설문했다. 피아노며 전화기, 텔레비전이며 냉장고, 승용차를 보유하고 있는지를 거수로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학생은 팔을 들어 올릴 일이 별로 없었지만, 간혹 어떤 학생은 계속해서 들고 있는 오른팔이 아파 왼팔로 오른팔을 지지하는 퍼포먼스까지 연출했다. 5학년 때까지의 그런 조사 방식이 6학년에 올라오자 설문지로 바뀌었다. 아마 내가 다닌 학교가 시범학교로 지정되어 그나마 선진적인 방식을 따랐던 터였으리라. 방과 후 집에서 나는 설문지를 읽어가며 다를 바 없는 질문들에 신속하게 체크했다. 그러다 부모님의 최종 학력을 묻는 질문을 놓고 잠시 고민했다. 결국 어머니는 ‘중졸’에, 아버지는 ‘고졸’에 표시했다.

저녁에 아버지께서 귀가하셨다. 누나, 형과 함께 쓰는 책상에 놓인 그 설문지를 보셨던가 보다. 저녁식사를 마치자 아버지께서 옆방으로 나를 부르셨다. “병무야, 왜 설문지에 거짓말을 했냐?” 나는 무슨 말씀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네 부모 모두 국졸(초등학교 졸업)인데, 그리고 그걸 네가 잘 알고 있는데, 왜 거짓으로 표시해 놓았느냐?’라는 뜻이었다. 나는 ‘창피해서요’라고 말씀드리지 못하고 거멓게 탄 종이장판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그런다고 사실이 바뀌지는 않아.” 그러고는 방바닥에 놓인 설문지를 내게 돌려주셨다.

동시를 쓰신다는 6학년 담임선생님이 칠판 위에 걸어놓은 급훈 액자에는 세 줄로 ‘성실 정직 화목’이라고 씌어 있었다. 첫 행은 ‘성실’, 끝 행은 ‘화목’이었지만, 중앙에 박힌 글자는 ‘정직’이었다. 그날, 아버지의 그 말씀은 껌껌한 베갯머리에서도, 쥐들이 달리기 경주 하던 천장에서도 이명처럼 울렸다. 창피했다. 그날 이후, 삶의 돛은 ‘정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직 없는 성실은 그야말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묻게 되고, 정직 없는 화목은 (집단)이기주의가 되는 것이다.

십여 년 후, 그날 같은 3월 어느 날 저녁, 우리 집에서 영장 없이 끌려간 내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서 47시간 동안 취조받고 나왔을 때, 그리고 또 다른 한밤에 피투성이가 된 친구가 병원 응급실에서 내게 도움을 청했을 때, 언제 와 계셨는지 저물녘 어느 다방 건물 앞에서, 또 새벽녘 종합병원 응급실 문 앞에서 우두커니 나를 기다리시던 아버지께서는 귀갓길에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아들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마음 졸이셨겠지만,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아’라고는 차마 아들에게 말씀하시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불측지연(不測之淵). 연못의 깊이를 알 수 없기에 불안하셨겠지만, 당신께서 박아놓은 말의 돛이 이미 펼쳐졌기에 묵묵히 지켜보고 계셨던 것이다. 그것이 말의 운명이다.

윤병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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