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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의 ‘직필직론’]종이신문은 죽지 않는다

입력 | 2014-04-03 03:00:00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7일은 ‘신문의 날’. 전혀 새삼스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날이다. 하지만 해마다 돌아오는 그날이 늘 심상치 않다. 종이신문이 아주 오래전부터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 목숨이 언제 다할 것인가.

너도나도 유행처럼 종이신문의 절멸을 예언한 지 20년이 넘었다. ‘예언자’ 대부분은 신문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들 길어야 5년, 10년이라고 했다. 디지털 혁명에 휩쓸려 신문사들이 계속 문을 닫았다. 세계적 신문들도 발행부수가 반 토막 났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발행부수 200만 부를 자랑하던 신문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제는 어느 신문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종이신문의 절멸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종이신문에 대한 희망을 접었다고도 한다. 신문들은 디지털 전략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있다. 300개 이상의 종이신문이 디지털 배급으로 돈을 번다. 그것으로 생존할 것이라고 한다. 올 3월 워싱턴포스트와 USA투데이의 발행인은 “종이신문의 장래는 자신들의 손을 떠났다”고 말했다. 독자들이 종이신문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는 것. 최고의 신문 장인(匠人)들조차 소심한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손을 놓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자신 있게 말한 ‘그날’은 언제인가. 벌써 5년도 지나고 10년도 흘렀다. 그래도 종이신문은 여전히 살아있다. 한 치 앞 자신의 미래를 알지 못하는 것이 세상살이. 무려 550년 동안 수많은 신제품 경쟁자를 극복하고 살아온 종이신문의 앞날을 점치는 것이 그리 쉽고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것을 증명하는 조짐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3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디지털 미디어 회의 참석자들은 종이신문의 죽음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빨리 오지 않는다고 의견을 모았다. ‘파이낸셜타임스’ 사장은 “100년 넘는 역사에서 2013년에 처음 종이신문을 포함한 출판사업이 판매 수입만으로 이익을 냈다”며 “종이신문이 적어도 10∼15년은 더 갈 것”이라고 말했다. ‘가디언’의 사장은 “지난 5개월 동안 종이신문 부수가 늘어났다. 밝은 미래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9월에만 해도 “우리 신문은 영국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자신의 월급을 삭감했던 터였다. 미국의 ‘뉴올리언스 타임스-피커윤’은 종이신문의 절멸에 대비해 2012년 5월부터 일주일에 사흘만 신문을 발행키로 했다. 그러나 1년도 안 돼 나머지 사흘은 판형을 바꾸어 매일 발행 체제로 돌아섰다. ‘필라델피아인콰이어러’도 토요일 신문 발행을 중단했다가 곧 재개했다. 최근 투자가 워런 버핏은 3억4400만 달러를 들여 지방신문 28개를 사들였다.

일본은 ‘신문의 죽음’을 무색하게 하는 나라다. 미국이나 유럽 신문들을 말라 죽이는 디지털 열풍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약 1000만 부, 아사히신문은 800만 부를 유지한다. 외국 신문들이 디지털 시대에 대비하듯 일본의 신문 보급업자들은 고령화사회라는 새 환경에 적응했다. 휠체어 대여, 혼자 사는 노인 가정 방문 등의 방식으로 노인 독자를 유지했다. 지방과 중앙 정부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을 보듬는 마을 봉사를 통해 ‘철갑을 두른 독자’들을 만들어 냈다. 하야시 가오리 도쿄대 교수는 종이신문이 앞으로도 40∼50년은 무난히 견딜 것으로 내다봤다.

많은 사람이 생각하듯 젊은 사람들이 아예 종이신문을 거들떠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올 1, 2월 실시된 미국 AP통신과 시카고대의 조사에 따르면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얻는 18∼29세의 47%, 30∼39세의 55%가 여전히 종이신문이나 잡지를 읽는다. 8개국 대상의 영국 옥스퍼드대 조사 역시 아무리 디지털 세상이라 해도 뉴스 독자들은 여전히 종이신문 보기를 즐긴다고 밝혔다. 디지털 수용이 필연의 미래이지만 디지털 뉴스 혁명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는 중장년층을 버려둘 수 없다고 한다.

이런 변화를 유심히 살핀다면 누구도 감히 “종이신문은 곧 죽는다”고 말하기 어렵다. 한국의 종이신문에도 극심한 위기는 조금 잦아든 분위기이다. 결국 남들 말 믿고 언제 죽느냐 기다리기보다 하루라도 더 오래 살기 위해 스스로 건강을 다스릴 수밖에 없다. 미국의 한 전문가는 워싱턴포스트가 왜 인터넷서점 ‘아마존’에 팔렸는지 설명했다. 뉴욕타임스보다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팔렸다는 것. 그는 뉴욕타임스를 “세상에서 모든 다른 신문을 제외하고 최악의 신문”이라고 불렀다. 그런 신문도 워싱턴포스트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디지털 혁명에 대처하는 능력뿐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뉴스 취재에도 더 나았다. “나중에 더 많은 것을.” 뉴욕타임스는 CNN과 속보 경쟁을 펼치지 않았다. 금방 속보가 튀어나오는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았다. 기본 사실을 보도한 뒤 완벽한 사실을 보도하기 위해 며칠이라도 기다렸다. 어떤 사건 사고에도 사려 깊게 이모저모를 다 짚은 다음 보도했다. 그래서 실수가 적다고 한다.

어느 종이신문이 더 오래가느냐는 그 신문의 질에 달려 있다. 생존을 걱정하는 한국의 신문인들이 깊이 참고해야 할 부분이다. 2015년 ‘신문의 날’에는 이런 글을 쓰고 싶지 않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