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욱 정치부장
26일 출범한 새정치민주연합이 내건 통합의 대의명분은 ‘기초선거 무(無)공천’이었다.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 선거에서 정당 공천을 않겠다는 것이다. 안철수는 2일 통합 선언에서 “이것이야말로 약속을 지키는 정치를 실제로 국민에게 보여준 것”이라고 역설했다. 통합 발표문에선 “새정치는 약속의 실천”이라고 못 박았다. 이 약속을 어긴 여권을 겨냥해 ‘약속 이행 대 거짓말’ 세력의 한판승부로 몰아가려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의 선택은 맥을 제대로 짚지 못했다. 먼저 ‘약속’ 프레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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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때 약속은 기초선거 정당공천을 폐지하자는 것이었다. 본질은 공천제도 개선이었다. 정당 공천을 하느냐 마느냐는 문제가 아니었다. 정치의 룰은 그동안 여야 합의로 바꿔 왔다. 한쪽이 약속을 어겼다 해서 비판받을 순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제도가 엄연히 살아 있는데 나머지 한쪽이 일방적으로 공천을 하지 않는 것이 약속 이행이라는 주장은 궁색해 보인다. 야권 일각에선 “본질을 회피하는 자해적 대응 방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정 정파가 대통령선거를 폐지하는 대신 내각제 개헌을 공약했다고 생각해 보자. 국회에서 치열한 협상이 무산되면서 내각제 개헌이 물 건너갔다. 그렇다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대통령후보를 내지 않는 길이 맞나. 안철수는 이 질문에도 답해야 한다.
기초선거 무공천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당공천의 폐해를 꼽는다. 공천권을 따내기 위해 거액의 공천 헌금이 오가는 음습한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리가 더 나가면 조만간 공천 장사의 주범인 정당을 해체하자는 주장도 등장할 것이다. 지나친 비약은 금물이다. 정당이 아무리 애물단지가 됐다고 해도 우리 헌법에 명시된 정당 민주주의는 함부로 내팽개칠 것은 아니다. 어렵더라도 정당을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더 쇄신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
안철수는 창당대회 인사말에서 “잠시 죽더라도 영원히 사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내에서 일고 있는 ‘기초선거 무공천’ 철회 요구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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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정치부장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