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팔며 살아온 과거 씁쓸”… 본명 버리고 필명 소설 펴내 화제
1980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로맹 가리는 유서를 통해 에밀 아자르가 자신의 필명임을 밝혔고, ‘해리 포터’ 시리즈를 쓴 조앤 K 롤링은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가명으로 소설 ‘쿠쿠스 콜링’을 발표했다. 명성에 얽매이지 않고, 기대를 배제한 채 작품으로 인정받고 싶어서다. 좁은 한국 문단에서는 이 같은 시도를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번 가명 소설 발간은 순수한 작품성보다는 ‘이름값’으로 저울질되고 문단 권력이나 출판사의 눈치를 보느라 작가적 양심을 지키기 어려운 현실에 울리는 종소리다. 출판사를 통해 최 작가와 두 차례 e메일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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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요구에 따라 소설의 주제와 스타일을 바꿔줬다. 예술을 버리고 달콤한 빵을 택했다. 무척 달았다. 하지만 금세 씁쓸해져서, 다시는 영혼을 팔지 않기로 결심했다.”
유명 문학상 수상작가 출신이지만 그는 “문학상 따위는 전혀 중요치 않다. 평가도 크게 중요치 않다”면서 “내 나름의 관찰 결과, 문학계에서 저명한 작가라 할지라도 일반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주요 문학출판사들이 주최하는 문학상의 경우, 수상 범위에 오른 작품을 두고 소설가들에게 수정을 요청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한다. 문학상을 수상한 한 소설가는 “심사위원의 내용 수정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하는 작가가 결국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문학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조언이기보다는 상업적 관점에서 고치라고 한다. 이를 통해 작가를 장악하고 길들이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40대 작가는 “장편소설을 출간하는 과정에서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세 번을 완전히 다시 쓴 적이 있다”면서 “남자 주인공의 외모를 부각시키고 연애 코드를 꼭 넣어야 판매가 수월하다고 그랬다”고 말했다.
한 문학출판사 대표는 “강의하는 여러 작가의 밥줄을 좌지우지하는 영향력 있는 문예창작과 교수는 ‘신성불가침’의 존재처럼 문단을 장악한다. 그 우산 아래 있는 후배, 제자 작가들도 그 권력의 일부를 누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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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다른 작가를 떠올릴 것 같다. 몇몇 장면이나 설정은 은밀하게 좋아해온 작가에게 빙의한다는 심정으로 썼다. 더 헷갈릴 것 같다.”
기왕 필명으로 나선 김에 평소 문단에서 꼴사나웠던 일들을 좀 얘기해 달라는 질문에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신사로서 지켜야 할 덕목이 있다. 신사는 지나간 일에 대해 악담하지 않는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