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극 강자 ‘정도전’을 통해 본 정통사극의 변화
‘정도전’(위 사진)은 정치적 혼란기인 고려 말부터 조선 초를 배경으로 한다. 이 시기가 사극에서 다뤄지기 시작한 것은 ‘용의 눈물’(아래 사진) 이후부터. 전문가들은 당시와 지금의 정치현실의 유사성이 두 작품의 인기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용의 눈물’은 이성계와 이방원을 중심으로 권력과 인생에 포커스를 맞췄고, ‘정도전’은 정치엘리트를 중심으로 정치 질서를 짜는 과정에 무게를 뒀다. 동아일보DB
최근 몇 년간 정통사극은 높은 제작비에 비해 시청률은 높지 않아 방송사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지난해 6월 종영한 KBS1 ‘대왕의 꿈’은 시청률 12%에서 시작했지만 지속적으로 인기가 떨어져 70부작 평균 시청률이 10%를 겨우 넘겼다. 반면 10% 남짓한 시청률에서 시작한 ‘정도전’은 방송 두 달 만에 16%가 넘는 시청률로 동시간대 1, 2위를 기록 중이다. 앞으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고려 멸망, 조선 건국 같은 굵직한 사건이 남아 있어 ‘정도전’의 시청률은 계속 오를 가능성이 높다.
‘정도전’은 시대 배경이 ‘용의 눈물’(1996∼1998년)과 겹친다. 하지만 조선의 태조와 태종이 되는 이성계와 이방원이 주인공이었던 ‘용의 눈물’과 달리 정치 엘리트인 정도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MBC도 비슷한 시기에 정도전을 내세운 사극 ‘파천황’을 준비했다가 제작을 잠정 연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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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드라마의 성격이 강한 점도 ‘정도전’이 인기를 끄는 요인으로 꼽힌다. 집필자인 정현민 작가는 10년간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낸 바 있다. 고려 말 권문세가인 이인임이 주인공 못지않은 인기를 얻는 이유도 그가 단순한 악역이 아닌 정치 고수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보수와 진보의 갈등처럼 이 드라마엔 현실 정치를 이입해 볼 요소가 많다 보니 더 인기를 얻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 덕분에 KBS1의 대하사극은 장년층 이상 남성들이 주로 보지만 ‘정도전’은 20∼40대 남성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1, 2회와 최근 21, 22회 방송의 시청률은 △20대 남성이 0.6%에서 2.3% △30대 남성은 1.5%에서 3.3% △40대 남성은 4.9%에서 8.9%로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정도전’의 김형일 KBS CP는 “급진개혁파 정도전과 수구파 이인임, 그 사이의 보수파 최영과 온건개혁파 정몽주 식으로 정도전과 주변 인물을 통해 국가와 정치를 바라보는 다양한 이념과 갈등을 조명하고자 한다”면서 “정치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지에 대해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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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가인 comedy9@donga.com·박훈상 기자
▼ “역대 최고의 사극은 용의 눈물” 35% ▼
‘사극 마니아’ 194명 설문
본보가 최근 네이버 ‘대하사극 매니아 카페’ 회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관식 설문에 응한 194명 중 68명(35%)이 ‘용의 눈물’을 최고작으로 평가했다. ‘태조왕건’과 ‘정도전’이 각각 20표(10%)를 얻어 공동 2위를 차지했고, 4위가 ‘대조영’(8%), 5위는 ‘불멸의 이순신’(7%)이었다. 고려나 조선 건국 같은 격변의 시기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 인기를 끌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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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의 남녀 사극 배우로는 유동근(43%)과 채시라(21%)가 꼽혔다. 유동근은 ‘용의 눈물’의 이방원, ‘정도전’의 이성계 역을 비롯해 ‘연개소문’ ‘조광조’ 등 여러 사극에서 주연을 맡았다. 남자 배우의 경우 ‘태조왕건’ ‘대조영’ ‘해신’의 최수종(22%)이 2위를 차지했고, ‘불멸의 이순신’에 나왔던 김명민(5%)이 3위, 서인석(4%)과 박영규(3%)가 4, 5위를 기록했다.
여배우의 경우 ‘인수대비’ ‘천추태후’ ‘왕과 비’에서 주인공으로 나왔던 채시라에 이어 최명길(16%) 전인화(8%) 하지원(5%) 고현정(5%)이 5위권에 들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