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고민 없는 사회로] <下>늘어나는 어린이집, 국공립은 여전히 좁은 문
○ 엄마들은 왜 국공립을 선호하나
김 씨는 왜 서류까지 위조해가면서 아이를 국공립 어린이집에 보내려 했을까. 그는 “아이를 1년 동안 가정어린이집에 보내 보니 도저히 믿고 맡길 수가 없더라”고 회상했다.
가정어린이집은 방이 세 칸 딸린 106m²(약 32평) 남짓한 아파트에서 운영됐다. 책상은 베란다에 있었고 체육수업은 거실에서 진행됐다. 공간도 좁고 허술해 보였다. 당시 어린이집에선 자주 학부모들에게 추가 경비를 요구했다. 특별활동비도 10만 원을 호가했고 그달에 생일을 맞은 아이의 엄마들은 3만∼4만 원씩 갹출해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반면 지금 다니는 국공립 어린이집에선 영어와 체육, 장구를 배우는 특별활동비를 3만4500원만 내면 된다. 보육 공간도 넓고 보육교사 12명, 조리사 2명, 공익근무요원 2명 등 많은 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굳이 학부모가 생일상을 신경 쓸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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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다른 민간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려고 했더니 원장은 전에 다닌 어린이집을 물었다. 사실대로 말하자 입학을 거절당했다. 이전 어린이집에서 학부모들이 원장을 고소했다는 게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결국 경 씨는 또 다른 어린이집을 찾아 “멀리서 이사왔다”며 거짓말을 했다. 다행히 입학 허가가 났지만 오리엔테이션 때 원장은 이런 말을 했다. “불편한 게 있어도 밖에다가 발설하지 마세요. 그럴 경우 어떻게든 엄마 이름을 알아낼 수 있어요. 그러면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힘들어질 거예요.”
○ 국공립 시설 더 과감히 늘리자
보육시설을 만드는 초창기부터 국가가 자원을 대폭 투입한 선진국과는 달리 국내의 어린이집은 민간에 대거 의존하고 있다. 전국 어린이집 총 4만3770곳 중 국공립은 2332곳(5.3%)에 불과하고 민간·가정어린이집이 총 3만8383곳(87.7%)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서문희 육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민간어린이집에선 자본을 투자했으니 돈을 보전하고 이윤을 가져가야 하는 상황이니 비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부모가 더 많은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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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달 3일 ‘일하는 여성을 위한 생애주기별 경력유지 지원방안’을 발표하면서 국공립 어린이집을 매년 150개소씩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약속한 대로 이행해도 국공립시설의 비율은 6%대에 그친다. 김정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은 “매년 150개로는 어림없다. 어린이집의 80∼90%는 국공립이어야 바람직하지만 안 되면 50%라도 되도록 수백 개, 수천 개씩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의 경우에는 보육시설은 대부분 국공립이다. 스웨덴의 유아학교는 75%가 공립으로 운영되고 프랑스도 유아학교는 모두 공립이다.
보육의 질을 높이려면 국공립시설을 대폭 확충하는 한편 어린이집의 관리감독을 엄격하게 해 부실한 어린이집이 퇴출되도록 해야 한다. 유희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민간시설도 국공립시설처럼 투명하게 회계 관리를 해야 한다”며 “아이 한 명당 들어가는 보육료가 온전히 아이에게 들어갈 수 있도록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민간어린이집은 정부의 평가인증을 원하는 곳만 자발적으로 받고 있다. 정부는 2015년부터 모든 어린이집에 평가인증을 의무화할 예정이다. 유 연구위원은 “호주의 경우 평가인증을 통과하지 않은 곳은 국가에서 지원금을 아예 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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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열 인턴기자 고려대 사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