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10억원 초과 기부-출연금 공시 의무화 3월부터 시행
11일 마감되는 연간 26조 원의 예산·기금을 굴리는 서울시의 시금고 은행 선정 입찰에서도 출혈경쟁 논란이 재연됐다. 우리은행이 수성(守城)에 나선 가운데 국민, 신한, 하나은행 등은 파격적인 금리와 대규모 출연금을 앞세워 도전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일제강점기였던 1915년에 전신(前身)인 조선상업은행이 시금고 은행이 된 뒤 99년간 서울시 금고를 맡아 왔다. 은행권의 관계자는 “4년 전 입찰 당시의 출연금(1500억 원)을 고려하면 이번에는 출연금이 2000억 원을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지방자치단체 금고, 공항 입점 등 대규모 입찰을 둘러싼 시중은행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당국이 “과당경쟁을 막아 금융소비자에게 돌아갈 ‘파이’를 키우겠다”며 출연금을 제한하자 지자체와 금융사 등은 “자율경쟁을 가로막는다”며 반발하고 있다.
○ 입찰경쟁 과열 부작용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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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은행들이 지자체, 대학, 병원 등 대형기관의 금고로 지정되려면 수억∼수천억 원의 기부금이나 출연금을 내는 게 관행이었다. 금융위에 따르면 2011∼2013년 은행들이 금고 유치를 위해 낸 기부금은 5000억 원 수준이다.
최근 은행권의 수익이 줄고 국내 금융시장이 포화 상태에 접어들자 목 좋은 대형 기관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부작용도 곳곳에서 나타난다. 한 시중은행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임원 및 본부장을 총동원해 주요 지자체장 및 광역·기초의원 후보 출판기념회에 후원금을 냈다.
약정 기간이 통상 3∼4년이어서 자치단체장 임기 중에 한 번은 금고 재선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고, 단체장과 의회에 밉보였다가는 금고 운영권을 놓칠 수 있어서다. 감사원은 2011년 금고 은행에서 법인카드를 받아 상품권 등 향응을 제공받고 해외 골프여행까지 다녀온 지자체 공무원들을 대거 적발하기도 했다.
○ “자율경쟁 왜 막나” 지자체 등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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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도 마뜩잖다는 반응을 보인다. ‘과도한 경쟁을 막는다’는 취지는 좋지만 공시를 하게 되면 기부금이 ‘정찰제’화되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A대학에 얼마를 기부했는지 드러나면 B대학이 “A대학 기부금보다 많아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다는 것.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부금 명세는 경쟁을 위한 일종의 내부기밀”이라며 “지자체, 대학에 접근할 새로운 영업전략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