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소음공화국’] 서울 상가 소음수준 측정해보니
○ 상점 열에 아홉이 소음 기준 위반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한 상점들의 판촉 경쟁은 ‘소음 전쟁’ 수준이다.
날이 어두워질수록 소음은 심해졌다. 오후 3, 4시경 종로 명동 신촌에서 주간 소음 기준인 70dB(데시벨)을 어긴 곳은 35곳 중 20곳(57.1%)이었다. 하지만 오후 7시가 넘어가자 매장들은 오히려 음악 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서교동 ‘홍대 예술의 거리’에 줄지어 들어서 있는 술집과 옷가게들은 일제히 볼륨을 높였다. 14곳의 평균치를 내보니 78dB이 나왔다. 강남역 인근 C호프 앞에서는 순간 최고 소음이 99.1dB까지 치솟았다.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활발하게 열리고 있는 길거리 공연(버스킹)도 새로운 소음 주범이다. 지난달 28일 오후 8시경 서교동 ‘걷고 싶은 거리’에서는 거리의 악사(버스커) 10여 팀이 휴대용 앰프를 설치하고 공연을 벌이고 있었다. 평균 74∼81dB로 소음 기준을 위반한 상태였다. 이곳은 주거지역이라 야간 생활소음 기준인 60dB을 넘으면 안 된다. 일부 시민들은 눈살을 찌푸린 채 빠른 걸음으로 길을 지났다. 대학생 서모 씨(27·여)는 “공연을 즐길 권리만큼 ‘조용히 길을 걷고 싶다’는 권리도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는 청력에도 심각한 손상을 줄 수 있다. 본보가 조사한 상점 127곳 중 순간 최대 음량이 85dB 이상이었던 곳은 29곳(22.8%), 90dB 이상은 7곳(5.5%)이었다. 전기톱이나 헬기 소음이 100dB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주 높은 소음이다.
전문가들은 소음이 85dB을 넘으면 청력이 손상되기 시작해 100dB 이상에 오래 노출되면 영구적인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 “소음 기준 낮춰 엄격히 법 적용해야”
전문가들은 소음 기준 자체가 너무 높다고 지적한다. 현행 소음진동관리법에 따르면 상업 지역의 소음 기준은 시간대에 따라 60∼70dB, 주거 지역은 60∼65dB이다. 달리 말하면 60dB 이하의 음량이라면 밤새 스피커를 틀어도 불법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허술한 규정 때문에 상가 인근에 사는 주민들의 피해는 일상화돼 있다. 서교동 상점 건물 4층 원룸에 사는 대학생 최모 씨(28)는 “같은 건물 1, 2층 술집에서 새벽 4시까지 음악 소리가 울려 구청에 민원도 내봤지만 조용한 것은 하루이틀뿐”이라고 말했다.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장은 “소음 단속에 한정해 ‘암행 단속’을 허용하고, 소리의 크기뿐 아니라 지속 시간도 단속 기준에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김재형 기자
김성훈 인턴기자 한양대 사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