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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영화계 큰별’ 원로배우 황정순씨

입력 | 2014-02-19 03:00:00

전쟁-가난-질곡의 삶 다독인 ‘한국의 어머니’




35세 때부터 숱한 영화에서 어머니를 연기했던 배우 황정순. 김종원 영화평론가협회 상임고문은 사진에 대해 “1960년 ‘박서방’에 출연했을 때로 추정된다” 고 말했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한국의 진짜 어머니고, 최초의 어머니였어요. 지난해 원로 영화인 모임에서 시를 한 수 읊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배우 고은아)

“젊을 때부터 어머니 역할을 많이 해서 동년배들도 촬영장에선 모두 어머니라고 불렀어요. 후배들을 예뻐하고 기를 살려주셨는데….”(배우 문희)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는 밤늦게까지 영화인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이날 오후 이곳에서 지병으로 별세한 원로배우 황정순 씨(사진)의 빈소를 찾는 행렬이었다. 질곡의 한국 근현대사를 인고의 모정으로 승화해 스크린에 투영했던 ‘영화계의 영원한 어머니’가 향년 89세로 영원한 안식을 청한 것이다. 절친인 배우 최지희는 빈소에서 “친정어머니처럼 모셨던 분이 돌아가셨다”며 오열했다.

고인은 1925년 경기 시흥에서 태어나 서울 동명여고를 졸업했다. 1940년 서울 서대문구 동양극장에서 15세의 나이로 연극배우로 데뷔했고 1941년 허영 감독의 ‘그대와 나’로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다.

1949년 장황연 감독의 ‘청춘행로’에서 며느리 역할로 주목받은 고인은 1960년대부터 며느리와 어머니 역할 전문 조연이었다. 35세 때인 1960년 강대진 감독의 ‘박서방’에서 처음 어머니 역할을 맡아 전쟁과 가난의 풍상을 견딘 한국적 어머니의 표상을 보여줬다. 당시 고인의 남편 역으로 단골 출연한 배우가 김희라의 아버지인 김승호였다.

고인은 유현목 감독의 ‘김약국의 딸들’(1963년), 강대철 감독의 ‘내일의 팔도강산’(1971년), 이두용 감독의 ‘장남’(1984년)을 비롯해 4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한국 여배우로서는 최다 기록이며 남녀 배우를 통틀어 조연상을 가장 많이 받은 배우이기도 하다.

그는 200편이 넘는 연극 무대에도 올랐다. 1962년 서울 남산드라마센터에서 열린 미국 극작가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 초연 무대 때는 광기에 사로잡힌 엄마 역으로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배우 박정자는 “평소엔 애기같이 맑은 성품이었으나 무대에서는 요만큼의 찌꺼기도 남기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인 배우였다”고 했다.

1986년 ‘88짝꿍’을 마지막으로 배우생활을 접었는데 2005년 발병한 치매로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11월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에서는 공로상 수상자로 휠체어를 타고 나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해 후배 영화인들을 울렸다. 영화계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신상옥 유현목 감독에 이어 세 번째로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김종원 영화평론가협회 상임고문은 “고인은 자신만의 연기 영역을 구축한 독보적인 배우였다. 영화 속에서 보여준 지고지순한 여성의 모습은 근대사를 버텨온 어머니상의 전형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날 빈소에는 배우 문희 고은아 최불암 김민자 박정자 이해룡 김영인, 영화감독 변장호 정진우 심우섭, 거룡 한국영화배우협회장 등이 다녀갔다. 박근혜 대통령,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남궁원 영화인총연합회장, 배우 안성기 이덕화 유지인 이병헌 등이 조화를 보냈다.

신영균 신영예술문화재단 이사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나보다 세 살이 많은 고인은 ‘마부’(1961년)에서 나의 어머니로 나왔다. 당시 젊은 나이(36세)에도 따뜻한 모성을 완벽하게 연기하던 모습이 선하다”고 기억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이성규 씨(자영업)와 딸 이일미자 씨, 며느리 박정남 씨가 있다. 발인은 20일 오전 11시, 장지는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 02-2258-5940

민병선 bluedot@donga.com·박훈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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