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은 어제 업무상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공판에서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같은 날 재판부는 작년 9월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된 구자원 LIG그룹 회장에게도 똑같은 형량을 선고했다. 법원이 집행을 유예할 수 있는 최대 형량이 징역 3년이다. 두 사람의 선고 형량은 삼성 이건희 회장 등 기업 총수들이 과거 비리와 관련된 재판에서 줄줄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형량의 공식’을 연상시킨다.
‘경제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법원은 대기업 총수의 범죄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며 2012년 김 회장부터 실형을 선고하기 시작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같은 ‘봐주기 선고’가 사라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새 양형 기준에 따라 기업 총수의 경영 공백 우려는 집행유예 참작의 사유가 되지 못했다. 항소심에서도 원심보다 형량을 깎아주는 일은 있어도 집행유예는 여간해서 선고하지 않았다. 법원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던 과거로 슬그머니 돌아가서는 안 된다.
법원은 김 회장을 집행유예로 풀어준 이유에 대해 계열사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피해 위험의 규모가 부풀려진 측면이 있고, 실제 손해가 발생하지 않은 점 등을 들었다. 김 회장의 범행이 개인적인 치부 차원이 아니라 그룹의 재무적 위험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도 참작했다. 우울증과 패혈증으로 인한 호흡곤란 등 건강 상태도 감안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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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CJ 효성 동양 금호석유화학 웅진 KT 같은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재판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법원은 기업 총수들의 비리에 대해 옥석을 가리고 죄질을 따져 반드시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기업들 스스로도 준법의식과 투명성을 높여 나가는 의지와 노력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