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원정 연구원 ‘괴성도 분석’ 논문한발 꺾어들고 한손엔 붓 든 형상… 明나라때 ‘수험의 신’으로 받들어한반도에도 전파돼 ‘뇌공도’로 남아
한양대박물관이 소장한 조석진과 안중식의 1892년 ‘해상군선도’. 왼쪽 뒤편에 용의 머리를 밟고 선 괴성의 모습이 보인다. 조선에서도 관운을 비는 뜻에서 그림에 괴성을 그려 넣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앞쪽의 다섯 명은 모두 도교에서 신선으로 추앙받는 이들로 왼쪽부터 여동빈 종리권 유해섬 장과로 이철괴다. 배원정 연구원 제공
‘공부의 신’이라 하면 드라마나 만화를 떠올릴 사람이 많겠다. 하지만 중국이나 대만은 다르다. 요즘도 수험생 책상 앞에 얼핏 요괴처럼 보이는 그림을 붙여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신(神)이 바로 도교에서 유래한 ‘수험의 신’ 괴성(魁星)이다.
배원정 월전미술문화재단 초빙연구원(33)은 최근 국립중앙박물관 학술지 ‘미술자료’ 제84호에 게재한 논문 ‘괴성 도상의 기원과 전개’를 통해 중국 문화에서 혁혁한 위상을 차지하는 괴성을 분석했다. 현재 국내에선 괴성이 다소 생소하지만, 조선회화에 그림 소재로 등장하곤 해 한국과도 인연이 얕지 않다.
중국 화가 마덕소(1824∼?)가 그린 ‘집자괴성점두도’. 괴성의 ‘괴’ 자를 형상화한 문자도의 백미로 꼽힌다. 재밌는 건 괴성이 밟고 있는 한자가 ‘큰거북 오(鰲)’란 점이다. 중국 사자성어 ‘독점오두(獨占鰲頭)’는 장원급제자에게 대전 앞 계단에 새겨진 큰 거북 머리를 밟고 지나도록 한 관례에서 나온 말로 장원급제자를 뜻한다. 배원정 연구원 제공
괴성의 인기도 함께 치솟았다. 명대의 문집 ‘엄산외집(儼山外集)’에는 “시험장 앞에서 점토로 만든 괴성 인형을 팔았다”고 나온다. 감독관이 미신에 기대지 말라고 타박해도 소용이 없었단다. 지방 고을마다 문창각(文昌閣)이나 괴성루(魁星樓)가 들어서 제사 지내는 이들로 성황을 이뤘다. 배 연구원은 “괴성신앙은 청대로 이어져 문창제군 탄생일(음력 2월 3일) 제사엔 황제가 보낸 대신이 참석했다”고 설명했다.
괴성의 도상(圖像)도 흥미롭다. 한 손에 붓을 든 이유는 짐작되나, 꼭 한 발을 꺾어 들었고 ‘됫박’이 등장한다. 이는 한자 괴(魁)를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괴 자에서 왼쪽 변인 ‘귀신 귀(鬼)’는 한쪽 다리를 구부린 모양새처럼 보인다. 됫박은 오른쪽의 ‘말 두(斗)’를 형상화한 것으로 됫박 모양의 북두칠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괴성의 자취가 남아 있다. 화가 조석진(1853∼1920)과 안중식(1861∼1919)이 함께 그린 ‘해상군선도’(한양대 박물관 소장)에서 왼편에 입맞춤하는 여인네처럼 한 다리를 구부린 괴성을 만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김덕성(1729∼1797)의 ‘뇌공도(雷公圖·천둥의 신)’도 도상을 따져 보면 괴성도로 봐야 옳다. 배 연구원은 “중국처럼 폭발력은 없었으나 한반도에도 괴성신앙이 전파됐음을 증명하는 사료가 많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