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직군인 예우가 국가 존재이유… 보상청구 늦었다고 외면해서야…”
1956년 군복무를 하던 원모 씨(당시 23세)는 막사 주변 땅을 정리하기 위해 동료들과 야산에서 흙을 파내는 작업을 하다가 흙더미에 깔려 숨졌다. 원 씨에겐 태어난 지 5개월 된 딸과 부인이 있었다. 사고 다음 날 곧바로 원 씨의 시신을 화장한 육군은 11개월이 지나서야 유족에게 “원 씨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통보했다. 41년 후인 1997년 국가는 원 씨를 순직 처리하고 8년 후 국가유공자로 인정했지만 심장마비라는 사인은 그대로였다.
2008년 국민신문고 제도가 생기자 원 씨의 딸은 아버지의 사망 원인 규명을 요구했다. 2009년 12월 국방부로부터 ‘심장마비’가 아니라 ‘군부대의 과실로 인한 사고’였음을 통보받았지만 명예 회복이나 보상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원 씨의 딸과 부인은 2011년 4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 2심 재판부는 “원 씨 유족이 2009년에야 진실을 알았기 때문에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 기간인 ‘3년’이 지나지 않아 보상해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민사24부(부장판사 김상준)는 원 씨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유족에게 1억1849만 원을 배상하라”며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군인과 유족에게 합당한 보상과 예우를 해주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존재 이유”라고 판결했다고 4일 밝혔다. 재판부는 “진실을 알게 된 뒤 소송을 내기까지 1년 4개월이란 기간은 원 씨의 사망 원인을 밝히는 데 걸린 53년에 비해 그리 긴 기간이 아니다”라며 “생활고로 변호사의 조력을 얻기도 어려웠던 유족의 사정을 인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