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부탄, 의식주 해결위해 출가하지만 사원서도 남녀차별 존재왕의 어머니가 주최한 종교회의… 며칠간 여승처우에 대한 격론, 부탄불교의 새 방향 보여줘
조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차별은 출가사회에서도 엄연하다. 여성 출가자들은 구족계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정식 승려로 취급되지 않는다. 문헌 공부도 오직 남자 승려들, 비구들만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최근 10여 년 동안 여기에도 변화가 일고 있었다. 부탄의 여승들도 점점, 다른 나라의 여승들은 남자 승려들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고전어로 쓰인 경전과 논서들을 읽으며 정식 승려가 되는 비구니 수계를 받고 종교 의식을 집전할 자격을 가지며 재가자들에게서 후원을 받고 종교인으로서 사회적 존경을 얻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바깥세상에 점점 눈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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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의에는 얼마 전 한국에도 다녀간 티베트 비구니 텐진 빠모 스님도 참석했는데 스님은 승가 공동체를 네 개의 다리가 있는 테이블에 비유하면서 “남성과 여성 출가자와 재가자 등 네 집단으로 구성된 불교계에서 여성 출가자의 지위만 낮다면 어찌 테이블이 제대로 설 수 있겠는가”란 기조연설로 큰 박수를 받았다. 이어 부탄의 여성 출가자들의 열악한 상황에 대한 발표들이 이어지고, 한국 대만 등 비구니 교단이 존재하는 국가들의 현황 발표도 있었다.
문제는 둘째 날이었다. 남자 승려 몇 사람이 회의에 참석하면서 큰 목소리들이 불거져 나온 것이다. 그들은 부탄의 불교가 속하는 티베트 불교 전통에는 비구니가 있어본 적이 없었다며 왜 지금 그것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 비구니 전통이 있다지만 사실은 한 번 끊어졌던 것이라고 강변했다.
이 말을 들은 대만 비구니 스님이 발끈해 앞으로 걸어 나와 “우리를 모욕하느냐”고 소리치자 서양인 여성 출가자들이 잇따라 일어나 반박하는 발언을 하면서 장내는 웅성거리고 남성 발표자는 뭔가 더 긴 연설을 한 후 퇴장해 버렸다. 이 과정에서 부탄 여성들은 누구도 남자 승려들의 성차별적 발언에 항의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자 승려들 중 한 사람은 부탄 불교의 최고 수장 중 한 명이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종교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이기도 했다.
분위기는 셋째 날 다시 역전됐다. 이날 오후 몇몇 사람 사이에서 “티베트 불교 내에서 비구 비구니 차별 문제를 논의한 지 몇 년이 되었지만 아직 해결책이 없는 형편인데 이제 차라리 부탄이 용감하게 나서서 여성에게 비구니 수계를 시작하는 것도 국가적으로 나쁘지 않지 않는가” “오히려 부탄 불교의 위상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취지의 담화가 진행된 것이다. 그러자 부탄의 여승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학자들이 계율의 역사적 기원과 시대적 타당성을 연구해 보고서를 낸다면 고려해 보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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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들에 대한 성차별적 발언이 나올 때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눈을 찡끗하기도 하고 부탄 여성의 열악한 현실에 대한 대목에서는 뒤로 몸을 돌려 그녀들을 바라보며 같이 싸워 나가야 한다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휴식시간에는 전통복식을 곱게 차려입은 딸과 며느리, 사위들을 한국에서 온 우리에게 소개시키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그들은 대부분 서구에서 교육받았으며 세련되고 말과 행동이 조용하고 부드러웠다. 우리는 그들의 자비심과 열정 속에서 부탄 여성 출가자들의 미래를 밝힐 불씨를 본 듯했다.
조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