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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장성택에 버금가는 세도가 오극렬, 그는 무사할까

입력 | 2014-01-28 03:00:00


2012년 3월 8일 국제부녀절 기념 은하수음악회에서 가족을 이끌고 무대에 올라와 28세 김정은 앞에서 충성 맹세 노래를 부르는 오극렬 국방위원회 부위원장(당시 81세·오른쪽). 이날 부부 이중창을 불렀던 이용하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두 달 전 총살됐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김씨 왕조의 세도가(勢道家) 장성택이 어린 조카의 손에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한 뒤 그에게 줄을 섰던 ‘식객(食客)’들의 신세도 말이 아니다.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 ‘상객(上客)’들은 처형됐고 차객(次客)들은 수용소와 유배지에 끌려갔으며 하객(下客)들은 의금부의 21세기 버전인 보위부에서 국문(鞫問)을 당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장성택이 동아줄인 줄 알고 잡았는데 포승줄을 잡은 셈이 됐다.

하지만 김씨 왕조에는 또 하나의 세도가가 건재하다. 장씨의 견제를 받아 한때 위축됐지만 그가 숙청되자 몰려드는 식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바로 오극렬 국방위원회 부위원장(83)이다.

김씨 왕조는 신하가 측근 그룹을 거느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김정은 체제의 2인자에 오른 최룡해조차 1990년대 자신이 거느린 청년동맹 내부에 소왕국을 만들다가 유배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2대 왕 김정일은 단 두 명에게만은 예외적으로 소왕국을 눈감아 주었으니 바로 장성택과 오극렬이다.

오극렬은 ‘왕’의 부마이자 고모부였던 장성택과 달리 김씨 패밀리에 들어가지 못했을 뿐 가문과 경력은 장씨와 비할 바가 아니다. 그의 집안은 전사한 항일투사를 17명이나 배출한 북한의 으뜸 항일 가문이다. 오극렬의 부친 오중성은 김일성 부대 정치 간부로, 북한에서 충신의 귀감으로 내세우는 5촌 당숙 오중흡은 김일성 부대 7퇀장(연대장)으로 있다 전사했다.

김정일은 어렸을 때 자신을 끔찍하게 챙겨주고 보호해 준 오극렬을 몹시 따랐고 의형제까지 맺었다고 한다. 이런 배경을 업고 오극렬은 불과 36세에 공군사령관에, 48세엔 총참모장에 올랐다. 1989년 무력부장이던 항일 1세 오진우와의 불화 끝에 노동당 작전부장으로 옮겼지만, 이때부터 20년 동안 작전부라는 소왕국에서 제왕 노릇을 했다.

해외 공작 거점을 대거 갖고 있는 작전부는 위조화폐와 마약, 무기 수출 등 ‘마피아 경제’를 운영해 막대한 부를 벌어들였다. 하지만 2008년 8월 김정일이 뇌중풍으로 쓰러진 뒤 권력을 빠르게 이양받기 시작한 김정은은 맨 먼저 작전부의 거대한 돈줄부터 눈독을 들였다. 김정은은 오극렬의 소왕국을 분해해 연락소 등 핵심 조직을 심복 김영철의 정찰총국에 이관했다.

졸지에 소왕국을 빼앗긴 오극렬이 측은했던지 김정일은 국방위원회에 3국이라는 조직을 신설해 그에게 맡겼다. 오극렬을 위한 김정일의 마지막 배려였다. 3국은 3자연과학원으로 출범했다가 곧 3국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3국의 대외 명칭은 219국으로 2009년 2월 19일에 만들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소왕국의 90%가량을 빼앗긴 오극렬의 수중엔 3개의 연구기관과 1개의 후방 공급기관, 2개의 무역회사만 남았다. 측근들은 의리를 지켜 정찰총국에 가지 않고 남았다. 다행히 3개의 연구기관들은 북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첫 번째 기관은 해외 최신 과학기술정보 수집을 담당하고 있다. 인터넷도 할 수 있고 해외에 수시로 나갈 수 있으며 해킹팀도 갖고 있었다. 해킹팀은 나중에 정찰총국에 넘어갔다.

이 기관은 2002년 러시아 암호전문가를 매수해 당시 러시아가 해독하고 있던 미국과 한국의 암호체계를 빼왔고, 이를 통해 많은 암호를 풀어내는 공을 세웠다. 물론 지금은 한국의 바뀐 암호체계는 뚫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러시아와 영국에서 공기부양정에 대한 기술을 빼와 자체 개발을 할 수 있게 한 것도 이 기관이다. 이를 토대로 북한은 한국 서해 5도 방어에 가장 큰 위협인 공기부양정을 수백 척 생산했고 이란에도 수출했다.

두 번째 연구기관은 핵과 수소폭탄 관련 정보를 수집 연구하는 곳이다. 그에 비하면 존재 자체가 비밀인 세 번째 연구기관은 신비주의적 분위기마저 풍기는 곳이다. 생물마당과 지구마당 등을 극비로 연구한다고 하는데, 미국과 러시아에도 비슷한 연구기관이 있다며 만든 곳이다. 물리 화학 생물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북한에서 ‘초능력자’로 보고 되는 사람들도 이곳에 데려간다. 이곳은 오극렬의 직속이라 누구도 함부로 간섭하지 못하며 연구자들은 신청 다음 날 외국 출장을 갈 정도로 파격 대우를 받는다.

오극렬과 측근들은 소왕국을 빼앗긴 분풀이라도 하듯이 최근 몇 년간 국방위원회의 명칭에 어울리지 않게 잔디연구소, 가축병해충연구소 등 별의별 연구기관을 닥치는 대로 만들어 왔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간부 자제와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세운 식객들이 3국에 몰려들었다. 국방위원회 소속이라 군관으로 등용되고 노동당 입당도 쉬운 데다 해외에 출장을 갈 기회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의 주위에 몰려든 불나방들이 그렇듯이 진짜 인재는 열에 한 명이나 될까 말까 하고 나머지는 놀고먹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3국의 구성원 질적 수준은 위상 및 소문과는 거리가 멀다.

3국의 비대해짐과 더불어 오극렬의 위상도 올라가고 있다. 한때 공식석상에서조차 사라졌던 오극렬은 두 달 전 열린 과학자대회에서는 서열 3위로 호칭돼 건재를 알렸다. 하지만 불행히도 너무 늦었다. 83세 오극렬은 지금 치매 초기 단계로 파악되고 있다. 아침에 내린 지시를 저녁에 뒤엎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김정일의 배려로 하사받은 3국도 오극렬의 죽음과 더불어 사라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정보당국은 오극렬의 아들 오세원(43)이 평양 로열패밀리 2세 모임인 ‘봉화조’의 리더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정은과 친형 김정철도 한때 봉화조 맴버였다고 한다. 하지만 고모부 일가도 잔혹하게 멸족시키는 김정은 앞에서 오씨 가문의 명맥도 풍전등화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마지막 전통 세도가 오극렬 가문은 김정은 왕국에서 안녕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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