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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조진서]미화된 늑대의 삶

입력 | 2014-01-22 03:00:00


조진서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지난 주말 지인들과 단체로 할리우드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를 관람했다. 1990년대 주가조작과 돈세탁으로 큰돈을 번 미국의 금융인 조던 벨포트의 흥청망청 인생을 다뤘다. 소문대로 화끈하고 노골적이었다.

뉴욕 출신의 벨포트는 20대에 증권회사를 설립할 정도로 돈에 대한 욕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회사의 주식을 몰래 싼값에 사놓았다가 자기 고객들에게 비싸게 팔아넘기는 수법으로 큰 부(富)를 이룬다. 복잡한 금융공학 기법을 쓴 것도 아니다. ‘부자가 될 기회’라며 금융지식이 부족한 소시민들을 꼬드기는 고전적 사기였다.

미남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벨포트를 미워할 수 없는 귀여운 악당으로 연기했다. 감독 역시 그의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에만 초점을 맞춘다. 영화를 함께 본 2030 직장인들과의 가벼운 맥주 뒤풀이 자리에서는 ‘벨포트의 능란한 언변과 세일즈 능력을 배우고 싶다’는 소감이 많았다.

영화를 영화로만 즐길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실화라는 게 문제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늑대’ 벨포트에게 물어뜯긴 양, 즉 피해자들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영화가 상영된 세 시간 동안 피해자들의 사연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오직 파티, 또 파티뿐이다.

영화가 외면한 피해자들을 뉴욕타임스가 인터뷰했다. 자식의 대학등록금을 잃은 사람, 은퇴자금을 모두 날려버린 사람이 나왔다. 약 2억5000만 원을 잃었다는 전직 치과의사는 온몸의 피가 다 빨려버린 듯한 표정으로 사진기자의 카메라를 응시한다. 반면 벨포트는 감옥에서 나온 후 강연 한 번에 최고 수천만 원을 받는 강사가 됐다. 이 영화에도 단역으로 출연했다. 법원의 명령에 따라 수입의 50%를 사기 피해자들에게 보상해야 하지만 나머지 50%만으로도 충분히 부유한 삶을 살 수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더 잘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는 이런 일이 없을까? 주가조작, 탈세, 횡령, 배임 등 이른바 ‘화이트칼라 범죄(white-collar crime)’는 적발하기도 힘들고 적발한다 해도 피해자를 특정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저지른 사람들의 죄의식도 크지 않다. 초범이라거나 경제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솜방망이 판결을 받기도 한다. 피해자도 ‘내가 운이 없어서, 모자라서 그랬겠지’ 하고 자책하기 쉽다.

하지만 금융범죄는 피해 당사자뿐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신뢰 시스템에 손상을 준다. 피해자가 누군지 모른다 해서, 혹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 해서 그냥 넘어가도 되는 문제가 아니다.

부실 채권을 고객에게 떠넘긴 혐의로 동양그룹의 일부 임원들은 현재 구속돼 재판을 기다리는 상태다. 차명계좌로 회사와 고객 몰래 주식을 거래한 수십 명의 증권사 직원들도 지난달 적발돼 과태료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성숙한 자본주의 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선 시장의 룰을 깨는 금융범죄에 대한 도덕 불감증을 고쳐야 한다. 시스템의 허점을 노리는 ‘울프’의 화려한 삶은 영화 속에서만 존재해야 한다.

조진서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cj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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