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말 한마디]시인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시인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생계를 이루는 직장에서 스승을, 좋은 친구를 얻게 되는 것은 생의 축복이다. 출근길 걸음걸이의 리듬을 달라지게 할 정도다. 직장인이 사표를 쓸 마음을 갖게 하는 첫 번째 이유가 대부분 싫은 사람 때문이란 건 널리 알려진 사실 아닌가. 연봉보다, 일의 성격보다 사람이 사람을 살리고 죽게 만드는 것이니까.
일과 관련하여 인간관계 맺기의 난감함은 언제나 가위눌림을 가져온다. 초보 편집자 시절 스승 같은 상관에게 들은 한마디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인간관계에 미욱한 내게 자주 상처 해독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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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에 독이 퍼지지 않도록 하라는, 자기애에 관한 충고로 절대 잊을 수 없는 한마디였다. 선승(禪僧)의 말씀 같았다. 해독제 같은 그 한마디를 남겨주신 분은 최승호 시인이었다.
출판계 입문 직후 만난 분이 최 시인이었다는 것은 직업적인 길조였다. 나는 그를 직속상관 편집장으로, 주간으로 8년여를 모셨다. 책 편집 레이아웃, 표지 이미지 선정, 문안 쓰기 등의 기술적인 것을 배운 건 물론이다.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분위기를 들이마셨다. 공기를 마시듯. 독특한 언어 감각을 가진 시인에게 들은 그 한마디를 나는 후배 편집자에게도 변용하여 쓴다. 산문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나의 언어 감각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나와 비슷한 경우처럼 필자에게 상처가 될 독한 말을 듣고 울고 있는 후배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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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에게 힘이 되었을지, 허공으로 흩어진 말이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 함부로, 또는 고의로 날린 말의 독화살을 맞고 괴로워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편집자의 길은 수많은 독화살을 뽑아드는 것. 뽑아들고 독의 성분을 분석하는 일. 그리고 해독제 같은 말을 주문처럼 내 자신에게 거는 일이다. 어느 시구처럼 ‘상처를 밤낮없이 튼튼하게 꿰매고 있는’ 몸의 신비를 믿고서 말이다.
시인 정은숙(마음산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