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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이상훈]금융 女風의 시작 1978

입력 | 2014-01-03 03:00:00


이상훈 경제부 기자

권선주 IBK기업은행장과 오순명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은 국내 은행과 금융당국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여성이다. 최근 금융권을 강타하고 있는 여풍(女風)의 당당한 핵심들이다. 둘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1978년에 여성 대졸 공채 1기로 은행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1970년대 중반까지 은행 신입 채용은 세 갈래로 이뤄졌다. 남고 출신, 여고 출신, 그리고 대학 출신. 고졸은 남녀로 구분해 채용했지만, 대졸은 성별을 별도로 나누지 않았다. 대졸 여성을 아예 안 뽑았기 때문이다. 남녀 차별이 당연시되던 시절이었지만 유독 은행권의 차별이 유별났다. 여성은 결혼을 하거나 30세가 넘으면 은행을 떠난다는 각서를 써야 입행이 가능했다. 그런데도 승진 조건은 13년 근속이었다. ‘진급은 꿈도 꾸지 말라’는 뜻이었다. 남성 직원이 매년 1500원씩 월급이 오를 때, 여성은 1000원만 인상됐다.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없자 여성계가 들고일어났다. 유엔이 선포한 세계 여성의 해(1975년)가 기점이었다. YWCA 등 여성단체들이 “은행들의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라”며 국회와 정부에 요구했다. 효과는 있었다. 금융당국 요청으로 1977년 3월 제일은행(현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첫 공채로 대졸 여성 5명을 뽑았다. 다른 은행들도 동참했다. 권 행장은 기업은행에서, 오 처장은 상업은행(현 우리은행)에서 그렇게 기회를 잡았다.

채용의 유리천장은 깨졌지만 이들 앞에는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은행이 자발적 의지로 채용한 게 아니어서 더 그랬다. “임원들이 싫어해 여성 합격자는 채용 인원의 10% 이내로 조정될 것” “실력이 모자란데 어떻게 남녀평등을 주장하나”라는 말이 다른 곳도 아닌 신문 지면에 버젓이 실렸다. 한 은행은 직원끼리 결혼을 하자 남직원은 경남 진주로, 여직원은 강원 강릉으로 발령을 냈다. 여상 출신에게 승진시험 볼 기회를 준 뒤, 평소 업무와 동떨어진 문제를 출제해 전원 탈락시키기도 했다. ‘여행원(女行員)’이라는 단어는 최하위직 직원을 뜻하는 은행의 공식 용어였다.

지난해 말 금융사들은 경쟁적으로 여성 임원을 배출하며 여풍에 동참했다. 혹자는 “여성 대통령 시대에 운 좋게 기회를 잡았다”고 한다. 36년 전에도 “운 좋았다”는 소리를 듣던 이들이다. 권 행장은 “수혜도 받을 자격이 있어야 받는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입사 시기와 출신 학교는 다르지만, 임원에 오른 여성 대부분은 신산(辛酸)한 세월을 뚫은 주인공이었다.

누구보다 어렵고 힘들게 오른 만큼 금융권, 아니 사회 전체가 이들에게 바라는 바가 크다. 경영 실적을 올려야 하고 은행 특유의 파벌 인사도 깨야 한다. 무엇보다 아직도 사회에서 차별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돼야 한다. 어깨에 진 짐이 너무 무겁지 않느냐고? 그만한 짐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 이들이라서 2014년 대한민국은 그들에게 주목한다.

이상훈 경제부 기자 january@donga.com